샤를르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1821-1867)
소개
파리 출생. 아버지는 62세의 원로원(元老院)사무국 고관이었고, 어머니는 후처로 28세였다. 이러한 부모의 연령 불균형이 이상신경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6세 때 아버지가 죽고, 이듬해에 어머니는 육군 소령 자크 오피크와 재혼하였다. 의붓아버지가 대령으로 승진하여 리옹에 부임하자, 11세 된 그는 리옹의 사립학교에 들어갔고, 이어 리옹 왕립중학교의 기숙생이 되었다. 다음으로 군인 아버지의 파리 전근에 따라 루이 르 그랑 중학교로 전학했는데, 최고학년이 된 18세 때 품행관계로 퇴학처분을 당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리세)에는 단번에 합격하였다. 그 후 문학지망을 표명하여 양친을 실망시키고, 카르테 라탱을 방랑하며 방종한 생활을 하였다.
보다 못해 내려진 친족회의의 결의로 캘커타행 기선을 탔으나, 인도양의 모리스섬(모리셔스 本島)과 부르봉섬(프랑스령 레위니옹섬)에 체재하였을 뿐, 9개월 후에는 파리로 되돌아갔다. 이윽고 성년이 되어 의붓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상속하여, 센강(江)의 생 루이섬[島]에 거처를 두고 댄디슴의 이상을 추구, 호화판 탐미생활에 빠졌다. 흑백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 뒤발과 알게 되자, 관능적인 시흥(詩興)의 원천으로 삼았고, 평생의 악연(惡緣)을 맺은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2년 동안에 유산을 거의다 낭비해 버리자 법정후견인이 딸린 준금치산자(準禁治産者)가 되었다.
24세 때 《1845년의 살롱》을 출판하여 미술평론가로서 데뷔하였으며, 문예비평 ·시 ·단편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하여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1848년 의붓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2월혁명의 폭동에도 가담하였다. 또 E.A.포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였고 만년에 이르기까지 17년 간에 5권의 뛰어난 번역을 완성하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배우 마리 도브륀과 연애관계를 가졌으며, 또 사바티에 부인의 살롱의 단골이 되어 그녀를 성모처럼 추키면서 많은 연애시를 썼다. 1857년, 청년시절부터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온 시를 정리하여 시집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을 출판하였으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과 시 6편의 삭제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해 의붓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센강(江) 어귀의 옹푸루르 별장으로 옮겨 살았다. 1860년에 《인공낙원(人工樂園)》을 출판하고, 1861년에 《악의 꽃》의 재판을 간행하였다.
이 무렵부터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1864년, 벨기에의 브뤼셀에 가서 궁색한 생활을 면하기 위한 강연여행을 가졌으나 건강이 악화되었다.
1866년, 나뮈르시(市)의 생 루 교회를 구경하던 중 졸도하여, 뇌연화증(腦軟化症)의 징후로 브뤼셀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다음,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돌아와서 입원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여름, 실어증으로 46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있는 오피크가(家)의 무덤에 묻혔다. 그의 사후,1868~1869년에 간행된 전집 속에는 고티에가 서문을 쓴 《악의 꽃》(제3판) 《소산문시 Petits pomes en prose》, 만년의 작품인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이 수록되었으며, 또 들라크루아 ·바그너 ·고티에 등을 논한 평론은 《심미섭렵(審美涉獵) Curiosits esthtiques》(1869) 《낭만파 예술 L’art romantique》(1868)이라는 총제목하에 수록되었다. 또한 만년의 수기인 《화전(火箭)》 《벌거벗은 마음》은 《내심(內心)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보들레르의 서정시는 다음 세대인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죽은지 10여년이 지나서야 그의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발레리는 "그보다 위대하고 재능이 풍부한 시인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시인은 없다."라고 절찬하였다. E.A.포의 지적 세계에 감동하여 낭만파, 고답파의 구폐(舊弊)에서 벗어났으며 명석한 분석력과 논리와 상상력을 탐구하고, 고도의 음악성이 넘치는 시에 결부한 점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연보
1821년 : 파리에서 출생.
1827년 : 67세로 부친 사망.
1828년 :
어머니(39세) 오픽 소령과 재혼.
1836년 : 오픽 대령의 전임으로 루이 르 그랑 중.고등학교의 기숙사에 입사.
1839년 :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
1840년 : 유태인 창녀 사라와 사귀게 되다.
1841년
: 방탕한 파리생활의 시작, 네르발. 발자크 등과의
접촉,
친족회의의 결정으로 해상여행을 하게 되다.
1845년 : 미술비평 『1836년의 살롱』 출판.
1847년 :
소설 「라 팡파를로」 발표. 초록빛 눈의 여배우, 마리 도브랑을 연모.
1851년 : 「악의 꽃」 시 11편 발표.
1855년 :
「악의 꽃」 시 18편 발표.
1857년 : 『신판.해괴한 이야기들』 발매되었고 『악의 꽃』 초판 발매.
1861년 : 『악의
꽃』 재판 발매. 《프레스》지에 산문시 20편을 발표.
1865년 : 포의 번역집 『진지하고 괴이한 이야기』 발매.
1866년 :
나뮈르의 생후 성당을 방문 도중 졸도 반신불수가
되다.
실어증에
걸려 폐인이 됨.
1867년 : 46세를 일기로 사망.
민음사에서 발매한 『악의 꽃』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김인환 교수>
1부 우울과 이상
[ 독자에게 ]
우둔함과 과오, 죄악과 인색에
마음이 얽매이고, 육신은 시달려
우리는 기른다. 뉘우침을
거지들이 몸 속에 벌레들을
살찌우듯이
우리 악은 완강하고, 회한은 비열한 것
참회의 값을 듬뿍 짊어지고
우리는 즐겁게 진창길로 되돌아온다,
값싼 눈물에 우리네
온갖 떼가 씻긴다 믿으며.
악의 머리맡엔 마귀 트리스메지스트가
홀린 우리네 정신을 토닥거리고 오래 흔들어 재우니
우리의 의지라는 값비싼 금속마저
이
묘한 화학자 손에 모조리 증발된다.
우리를 조종하는 줄을 잡고 있는 악마여!
메스꺼운 사물에도 매혹되는 우리는
날마다 지옥을 향해 한걸음씩 내려간다.
두려움도
모르고 악취 풍기는 암흑을 가로질러
한물 간 창녀의 몹시 찍힌 젖퉁이를
핥고 물고 빠는 가난한 탕아처럼
우리도 가는 길에 은밀한 쾌락을 훔쳐 내어
말라빠진
오랜지를 비틀 듯 억세게 눌러 짠다.
수백만 거위 벌레처럼 촘촘히 우글대며
한 떼거리 마귀가 우리네 골 속에서 흥청거리고
숨을 쉬면 죽음이 허파 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되어 말없이 투정부리듯 흘러내린다.
강간과 독약, 그리고 단도와 방화가
가련한 우리네 운명의 볼품 없는 화폭을
익살맞은 데상으로 아직 수놓지 않았다면
아!
그것은 우리 영혼이 그만큼 대담하지 못한 탓이리!
그러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들
그리고 원숭이, 전갈, 독수리, 뱀들
우리네 악덕의 치사한 동물원에서
짖고, 악을 쓰고,
으르렁거리며, 기는 동물 중에서도
제일 더럽고 심술궂고 흉측한 녀석이 도사리고 있으니!
야단스레 쏘다니지도 아우성치지 않아도
기꺼이 대지를 산산조각 갈라
놓고
한번의 하품으로 지구라도 삼키리.
그 괴물이 바로 권태! 눈에는 막연히 눈물이 괸 채
수연동 피워 가며 단두대를 꿈꾼다.
독자여, 그대도 알겠지, 다루기 힘든 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나의 동류(同類)--내 형제여!
* 트리스메지스트 - Hermes 神의 별명. 웅변, 상업, 도둑들의 神. 神들의 使者.
* 수연동 - 인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담뱃대.
[ 축복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점지를 받고
시인(詩人)이 권태로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질겁한 어머니는 신(神)을 모독할 마음
가득하여
주먹을 떤다. 가여워하는 신을 향하여
--아! 이 조롱 거리를 기르기 보단 차라리
독사 한 뭉치를 몽땅 낳고 말 것을!
내 뱃속에 속죄를 잉태한
덧없는 쾌락의
그 밤이 증오스럽구나!
한심스런 내 남편의 혐오 거리가 되도록
그 많은 여자 중에 그대 나를 택했기에
오그라든 이 괴물을 연애 편지처럼
튀는 불꽃
속에 던져 버릴 수도 없구나.
그대의 증오로 저주받은 연장 위로
나를 짓누르는 그 증오를 튀어오르게 하여
독기 품은 새싹이 돋아나지 못하도록
이 가련한
나무를 비틀어 놓으리라!
이리하여 그녀는 원한의 거품 삼키고
영원한 섭리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지옥의 깊은 곳에다
어미의 죄값인, 화형의
장작더미를 준비한다.
그러나 천사의 보이지 않는 보호 아래
폐적당한 그 아이는 태양에 도취하고
그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 속에서
신들의 양식과
주홍빛 신주(神酒)를 발견한다.
그는 바람과 놀고 구름과 같이 얘기하며
십자가를 지고서 노래하며 도취한다.
그의 순례를 뒤따르는 성령은
숲속의 새처럼
쾌활한 그를 보며 눈물흘린다.
그가 사랑하고 싶은 이들은 모두 두려워 그를 주시하고
아니면 그가 얌전함에 용기를 얻어
서로 다투어 그에게서 탄식을
끌어내려
악랄한 짓들을 그에게 시험해 본다.
그가 입속에 넣을 빵과 포도주에
그들은 더러운 가래침과 재를 섞고
그의 손이 닿은 것은 허풍을 떨고 내동댕이치며
그의
발자국을 밟았다고 자신을 꾸짖는다.
그의 아내는 광장에 나와 외친다.
그이는 나를 미녀라 우러러보니
나는 고대 우상들 노릇을 하려오.
그들처럼 나도 몸에 자주
금칠을 하려오.
그리고 감송향(甘松香)과 향유, 미르라
추종과 고기와 술에 취하리라.
나를 칭송하는 마음에서 신의 경배를
웃으면서 가로챌
수 있을지 알아 보려오!
그리하여 이런 불경한 연극에 싫증이 날 때면
그에게 내 가냘픈 끈질긴 손을 얹고
독수리 손톱 같은 내 손톱으로
그이의
심장까지 길을 뚫어 놓으리라.
마치 갓난 새새끼처럼 떨며 팔딱이는
시뻘건 그의 심장을 가슴에서 끌어내어
내 사랑스런 짐승을 배불리기 위하여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주리라!
찬란한 옥좌 보이는 천국을 향하여
정숙한 시인은 그의 경건한 두 팔을 쳐들자.
명철한 그의 정신은 섬광처럼 확산되어
성난
군중의 모습을 그에게 은닉한다.
--축복받으소서 하나님, 당신이 주시는 고뇌란
우리의 부정(不淨)에 효력 있는 성약(聖藥)이니
성스런 쾌락을 강자에게
갖다주는
지고지순의 정수(精髓)로소이다!
저는 압니다, 거룩한 성군(聖軍)의 축복받은 서열 속에
당신께서 시인을 위하여 한 자리 남겨 두시고
옥좌, 힘의 천사,
주천사들의
영원한 축제에 시인도 초대하신 것을.
저는 압니다, 오직 고통만이 고귀한 것임을
세상도 지옥도 결코 물어뜯지 못하며
나의 신비로운 왕관을 엮기 위해서는
모든
시간과 우주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옛날 팔미라가 잃어 버린 보석도
미지의 금속들, 바다의 진주도
어쩌다 당신의 손으로 세공 되어진다 해도 미치지
못하리,
눈부시고 빛나는 이 아름다운 왕관엔.
왜냐하면 그것은 원시 광선의 원천에서 길러 낸
오로지 순수한 빛으로 만들어질 것이기에
그래서 인간의 눈은, 제아무리 찬란하게
빛난다 해도
흐리고 애처로운 거울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 신천옹(信天翁) ]
흔히 재미삼아 뱃사람들은
커다란 바닷새, 신천옹을 잡는다.
태평스런 여행의 이 동반자는
깊은 바다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른다.
일단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들은 어색하고 수줍어
가련하게도 크고 흰 그 날개를
노처럼 그들 옆구리에 끌리게
둔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어설퍼 기가 죽었는가!
전엔 그처럼 아름답던 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추한가!
어떤 친구는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을 올리고
다른 친구들은, 창공을 날던 이 병신을 절름대며 흉내낸다.
시인도 구름의 왕자와 같아서
폭풍우를 다스리고 사수(射手)를 비웃지만
야유 소리 들끓는 지상으로 추방되니
거대한 그
날개는
오히려 걷기에 거추장스러울 뿐.
* 신천옹 - 시 속에 '어린애 장난' 같은 것밖에 보지 못하고, 실리만을 추구하는 속세에 있어서의 시인의 상징.
[ 상승 ]
연못 위로, 계곡 위로,
산과 숲, 구름과 바다를 너머
태양 지나, 창공 지나,
별이 총총한 천구(天球) 끝
너머로,
내 영(靈)아, 넌 민첩하게 움직여
물 속에서 도취한 능숙한 헤엄꾼처럼
오묘한 무한을 즐거웁게 누비누나.
표현할 수 없는
힘찬 쾌락에 취하여
이 역한 독기 떠나 멀리 날아가
드높은 대기 속에 네 몸 깨끗이 씻어라.
또한 순수하고 신성한 술처럼
맑은 공간에
가득한
밝은 불을 마셔라.
안개 자욱한 인생을
무겁게 짓누르는
권태와 끝없는 비애를 뒤로 돌리고
힘찬 날개로 햇살 가득한 평온한 들판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상념들이, 종달새처럼 하늘을 향해
아침마다 자유로이 날아 오르고
삶 위를 날면서
꽃들과 말없는 사물의 언어를
쉬이
알아 듣는 자여!
[ 교감(交感) ]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에 살아있는 기둥들은
때때로 어렴풋한 얘기들을 들려주고
인간이 상징의 숲을 통해 그곳을
지나가면
그 숲은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광막한
어둡고 그윽한 조화 속에서
저 멀리 어울리는 긴 메아리처럼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합한다.
어린 아이 살결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목장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또 썩고, 짙은 향기들도 있어
호박,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들로 퍼져 나가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한다.
* 해석[김인환 역의 악의 꽃에서]
이 시는 상징주의의 한 오의(奧義)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비평가 사이에 의론이 많다. 이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그 개요를 설명하겠다. 이 시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로서, 생명이 없어 보이는 사물들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형상들은 눈에 안 보이는 어떠한 실재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시인이 전개하려는 주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진리 속에 시인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향기와 빛깔과 소리' 사이에 포함되는 밀접한 '조응(照應)' 또는 상통이다. 사실, 우주는 살아 있는 하나의 통합체이므로, 필연적으로 봄에 다양한, 감각할 수 있는 형상들은 사실 유일한 실재의 메아리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관념은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최후적인 주된 관념은, 만물 조응 중에서 어떠한 조응은 우리들을 순수와 순결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또 어떠한 것들은 죄악과 부패의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을 무한으로 일종의 정신과 관능의 도취로 끌어가는 향기들, 이 향기들을 퍼뜨리는 것이 '악의 꽃'이라 하겠다.
[ 저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하노라 ]
저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하노라.
페뷔스가 상(像)들을 금칠하기 좋아하던
그때엔 남녀가 거뜬한 마음으로
거짓이나
걱정없이 생을 즐겼고
또, 하늘은 깊은 애정으로 등을 어루만져 주며
그들의 귀중한 기관을 건강하게 단련시켜 주었다.
시벨 여신은
그때 풍요한 산물로 부러울 것 없었기에
많은 자식들에 조금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골고루 애정을 쏟는 어미
이리처럼
불그죽죽한 젖꼭지로 만물을 적셨다.
사내는 멋있고, 튼튼하고 건장하니
자기를 군주로 모시는 미녀들에게 오만할 수
있었고
티없이 깨끗하고 흠이 없이 순결한 그 과일들의
매끈하고 탄탄한 살점을 물어뜯고 싶었다!
오늘날 남녀의 나체를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예전의 그 자연스런 위대한 모습을
시인이 마음속에 그려 보고 싶을 때면 흉측한
모습으로
침울한 그림 앞에 음침한 오한이 그득한 영혼을 감싸옴을
그는 느낀다.
오, 벗은 옷을 한탄하는 괴상망측한 짓들이여!
오, 꼴불견 몸뚱이들! 가면을 씌어 놓아야 마땅한
몸통들이여!
오, 비틀리고 말라빠지고, 튀어나온 배와 축 처진 육신들,
매정하고 가차 없는 실용의 신이
그의 청동 기저귀 속에
감아 키운 아이들이여!
그리고 여인들은 양초처럼 창백하고
음탕에 젖어 있고 방탕이 길러 주는 그대들이여,
그리고 그대, 어미
적부터 내려오는 죄악과 다산성의 추악함을
질질 끌고 다니는 처녀들이여!
진정 우리 타락한 민족들은
옛 종족들이 알지 못했던 미를 지니고 있다.
심장의 궤양에 좀먹힌 얼굴들
우울의 미라고나 할 그
모습들을
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우리 뮤즈의 발명도
병든 겨레가 청춘에게 바치는
심오한 경의를 막지는 못하리라.
---성스런
청춘, 순박한 모습, 다정한 이마
흐르는 물인 양, 맑고 깨끗한 눈동자
하늘의 푸름처럼, 새처럼, 꽃처럼
그 향기, 그 노래,
그 감미로운 열정을
아무런 걱정 없이 만물 위에 퍼뜨려 주는 청춘이여!
* 페뷔스 -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 시벨 여신 - 대지와 동물의 여신. 하늘의 딸로 자연의 힘을 뜻한다.
[ 등대들 ]
루벤스, 망각의 강, 나태의 정원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싱싱한 살베개
하지만 거기엔 생명이 흘러나와 계속 용솟음친다.
마치
하늘의 바람과 바다의 조수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 깊숙하고 침울한 거울
거기엔 사랑스런 천사들이, 신비로 싸인
다정한 미소지으며, 그들 나라
감싸는
빙하와 소나무 그늘에서 나타난다.
렘브란트, 신음 소리 가득한 음침한 병원
커다란 십자가 하나가 유일한 장식
눈물짓는 기도가 오물에서 발산하고
한가닥 겨울
햇살이 불쑥 스쳐 지나간다.
미켈란젤로, 망막한 장소, 거기에 보인다.
헤라클레스들이 그리스도와 어울리고
힘센 망령들이 꼿꼿이 일어나, 어스름
석양에
손가락을 펴면서 수의를 찢어대는 모습이
권투 선수의 분노, 목신의 뻔뻔스러움
상놈들의 미를 그러모을 줄 알았던 그대
자존심에 부푼 가슴, 허약하고 누렇게 뜬
사나이
퓌제 고역수들의 울적한 황제
또, 수많은 고관들이 나비처럼
화려하게 노니는 카니발
샹들리에가 밝히는 경쾌하고 산뜻한 배경은
이 소용돌이치는 무도회에
광란을 퍼붓는다.
고야, 미지의 것들로 가득한 악몽
마녀들의 잔치에서 삶고 있는 태아들.
거울 들여다보는 노파들, 마귀를 유혹하려고
긴 양말
걷어올리는 발가벗은 아가씨들.
들라크로아, 악의 천사 드나드는 피의 호수
늘 푸른 전나무 숲으로 그늘지고
우울한 하늘 아래, 야릇한 군악 소리가
베버의
가쁜 한숨처럼 지나간다.
이 저주, 이 모독, 이 탄식들,
이 황홀함, 고함 소리, 눈물, 찬가들,
수천의 미궁에서 반향하는 메아리 소리
숙명적인
마음에는 성스러운 아편!
그것은 수천 명 보초들이 반복하는 외침이요,
수천의 메가폰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의 명령,
그것은 수천의 성채 위에 밝혀진
등대,
깊은 숲에서 방황하는 사냥꾼들의 호성!
왜냐하면, 주여, 세월 따라 흘러서
당신의 영원의 강가에 와서 사라질 이 뜨거운 흐느낌은
진정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인간
존엄성의 최상의 표징이기에.
* 퓌제(1824∼94) - 조각가. 당시 징역장이 있던 프랑스 루롱 항에서 강제 노동을 했음.
[ 병든 뮤즈 ]
아! 가엾은 뮤즈, 이 아침엔 왜 그러오?
움푹 패인 두 눈은 방의 환영들로 우글거리고
그대 얼굴빛에 번갈아 비치는 차갑고
말없는 광란과 공포
푸르스름한 음몽(淫夢) 마녀와 분홍빛 작은 요정
그들의 항아리 속에 담긴 공포와 사랑을 당신에게 퍼부었는가?
악몽이 사납고
짓궂은 주먹질로
전설 속의 늪 깊숙이 그대를 빠뜨렸는가?
원컨대, 건강의 향내 풍기는
그대의 가슴속엔 늘 견고한 사상이 찾아들고
기독교도로서의 그대 피가 힘차게 흐르기를
샹송의 어버이, 페뷔스와 추수의 영주인
그 위대한 목신 '빵'이 번걸아 다스리는
고대식 음절들의 헤아릴 수 없는
음향처럼.
* 강력하고 건전한 원시시대와, 타락한 인간이 광란과 공포 속에 잠겨 있는 현대의 대립에 의거한 시, 현대의 시신은 병든 시신이다. 음몽 마녀란 여자 형상을 하고 잠든 남자에게 나타나 정교한다는 악마, 작은 요정은 우아하게 생겼지만 꾀 바르고 장난 좋아한다는 정령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자다운 어조(기독교로서의 그대 피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즉, 보들레르는 기독교도의 피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한심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기독교도의 피는 빈약하고, 이교도의 피가 갖는 저 율동적인 힘을 가지고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 돈에 팔리는 뮤즈 ]
오, 내 마음의 뮤즈, 궁궐의 연인이여,
정월이 북풍을 풀어 놓을 때
눈 내리는 밤의 울적한 권태에 빠져 있는 동안
그대
보랏빛 두발을 녹여 줄 깜부깃불이라도 가질 것인지?
그리하여, 대리석 같은 그대 어깨를
덧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으로 되살리려나?
그대의 궁전처럼 텅 빈 그대의 돈지갑을
생각하고
창공의 금별이라도 따올 것인가?
그대, 날마다 저녁밥을 먹기 위해
찬양대 소녀처럼 향로를 만들고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테 데움을 불러야 하며
아니면 속된 인간들처럼 웃기기 위해
허기진 어릿광대처럼 마구 아양을 떨며
남 모를 눈물에 젖은 그대의 웃음을 팔아야
하는가.
[ 무능한 중 ]
옛날 승원은 그 방대한 벽들을
성스런 진리의 그림으로 꾸몄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신념을 북돋우고
엄숙한 신앙의 냉기도
누그러뜨렸다.
예수가 뿌린 씨가 꽃피던 시절에는
지금은 잊혀진 숱한 명승이
장례의 뜰 안을 아틀리에 삼고
순박하게 죽음을
찬양하였다.
---내 영혼, 또한 하나의 무덤
이 무능한 중은
그 속을 끝없이 헤매며 살고 있건만
아무것도 이 추악한 승원의 벽을
치장하지 않는다.
오, 나태한 중이여!
그러니 언제 내가
내 비참한 곤궁함의 생생한 광경을 그려 내기 위해
내 손에 일을 주고, 내 눈에
사랑을 줄 수 있으리까?
[ 적수 ]
내 청춘은 오직 어두운 폭풍우
여기저기 밝은 햇살이 비치었어도
천둥과 비바람이 사정없이 휩쓸어
내 정원에 남은 건 빨간
열매 몇 개
이제 나 사상의 가을에 다가섰으니
삽과 쇠갈고리를 쥐어야겠다.
무덤처럼 커다란 물구멍이
홍수난 대지를 새로 갈기
위하여
하지만 그 누가 알랴,
내가 꿈꾸는 새 꽃들이
갯벌처럼 씻겨진 이 흙 속에서
생기 줄 신비한 양식 찾아낼는지를?
---오, 이 고뇌여!
시간은 생명을 좀먹고
우리의 심장을 갉아먹고 이 엉큼한 적수는
인간이 잃어 가는 피로써 자라며 살쪄
간다.
[ 불운 ]
이처럼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려면
시지프스,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리라!
아무리 일에만 전심한다 해도
예술은 길고 시간은
짧으니
유명한 무덤에서 멀리
외따로 떨어진 묘지를 향해
내 마음을 가린 북인 양
장송곡치면서 나아가누나.
---수많은 보석이
잠자고 있다.
어둠과 망각 속에 파묻혀
곡괭이도 측심기도
닿지 않는 곳에
수많은 꽃들이
마지 못해 풍기누나.
마지 못해 풍기누나.
비밀처럼 감미로운 꽃향기를
심오한 고독 속에서.
[ 전생(前生) ]
나는 오랜 세월 살았네, 널따란 주랑(柱廊) 아래서
바다의 태양이 수천의 불빛으로 그곳을 물들이고
그 곧고 우람한
기둥들은
저녁이면 그곳을 현무암 동굴처럼 만들어 주었다.
파도는 하늘의 영상들을 바다에 굴리며
그 풍부한 음악의 전능한 화음을
나의 눈에 비치는 저녁놀에
엄숙하고 신비롭게 뒤섞어
놓았다.
바로 그곳이 내가 산 곳, 안일 속에서
창공과 물결과 찬란한 빛 가운데에서
온통 향기로 밴 발가숭이 노예들에 둘러싸여서
그들은 내 이마를 종려잎으로 식혀 주었고
그들이 신경을 쓴 유일한 일은
나를 번민케 하던 괴로운 비밀을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 길 떠난 보헤미안 ]
정열적인 눈동자의 점장이 종족들이
어제 길을 떠났네, 새끼들을 등에 업고
혹은 그 굶주린 아가리에다
상비의 보물, 축 처진
젖꼭지를 내맡긴 채
사내들은 번뜩이는 무기를 메고 걸어서 갔네.
식구들은 웅크리고 마차를 따라
잃어버린 환영 좇는 서글픔으로
무거워진 눈들을
하늘 위로 굴리면서
모래의 성안에선 귀뚜라미가
지나가는 그들 바라보며 목청껏 노래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시벨 여신은 녹음을 펼쳐 주니
바위에 물이 솟고, 사막에 꽃이 피네.
이 방랑객들 가는 길 앞에
열린 것은 어두운 미래의 친근한 왕국.
[ 인간과 바다 ]
자유로운 인간이여, 항상 바다를 사랑하라!
바다는 그대의 거울, 그대는 그대의 넋을
한없이 출렁이는 물결 속에 비추어
본다.
그대의 정신 또한 바다처럼 깊숙한 쓰라린 심연.
그대는 즐겨 그대의 모습 속에 잠겨든다.
그대는 그것을 눈과 팔로 껴안고
그대 마음은 사납고 격한 바다의 탄식에
문득
그대의 갈등도 사그러진다.
그대들은 둘 다 음흉하고 조심성이 많아
인간이여, 그대의 심연 바닥을 헤아릴 길 없고
오, 바다여, 네 은밀한 보화를 아는 이
아무도 없기에
그토록 조심스레 그대들은 비밀을 지키는구나!
하지만 그대들은 태고 적부터
인정도 회한도 없이 서로 싸워 왔으니
그토록 살육과 죽음을 좋아하는가.
오, 영원한 투사들!
오, 냉혹한 형제들이여!
[ 동 쥐앙은 지옥으로 ]
동 쥐앙이 삼도천으로 내려가서
샤롱에게 뱃값을 치르자
한 침울한 거지가, 앙티스테느처럼 거만한 눈초리를 하고
억센 복수의
팔로 노를 잡았다.
늘어진 젖통과 헤벌어진 옷자락을 내보인 채
여자들은 어두운 하늘 아래 몸부림치며
제물로 바쳐진 한떼의 짐승들처럼
그의
뒤에서 긴 신음 소리 내고 있었다.
스가나렐은 껄껄대며 판돈 내라 보채고
한편에선 동 뤼이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강가에서 헤매는 모든 사자(死者)들에게
백발로
덮인 제 이마 비웃던 그 뻔뻔스런 아들을 가리킨다.
정숙하고 야윈 엘비르는 상복을 입고 떨면서
지난날의 애인인, 불성실한 남편 곁에서
처음 맹세의 다정스러움이 다시
솟아날
마지막 미소를 그에게 구하려 하나
갑옷을 입은 강건한 석상의 사나이가
키를 잡고 서서 검은 물결 헤쳐 간다.
그러나 천연스런 그 영웅은, 제 장검에 몸을
굽히고
물고랑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 샤롱 - 신화에 나오는 삼도천의 나무지기.
* 앙티스테느 - 견유학파의 시조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 스가나엘 - 동
쥐앙의 몸종.
* 동 뤼이 - 동 쥐앙의 아버지.
* 엘비르 - 동 쥐앙의 아내.
* 갑옷을 입은 강건한 석상의 사나이 - 자기 딸이 동 쥐앙에게 농락당했음을 알고 그와 결투를 벌였지만 패배하고 만 기사의 입장을 말함. 마침내 신의 도움을 받아 동 쥐앙을 지옥에까지 끌고 내려갔다.
[ 교만의 벌 ]
신학이 비길 데 없는 정기와 기력으로
꽃피던 희한한 시대에 있었다는 이야기,
어느날 아주 위대한 어느 박사님의
---믿음
없는 사람들을 억지로 믿게 하고
캄캄한 마음 밑바닥에서 그들을 뒤흔들고
아마도 순결한 성령만이 다닐 수 있는
박사님 자신도 알지
못하는 괴상한 길을
천상의 영광을 향하여 넘어갔는데---
분에 넘치게 올라간 사람처럼 혼란에 빠져
악마 같은 교만에 사로잡혀
소리를 질렀다.
주여, 아기 예수여! 나 그대를 너무 높이 치켜 세웠다.
하나, 갑옷으로 막지 않고 그대를 공격하고 싶은 생각이
내게
있었다면
그대의 수치, 또한 그대의 영광에 비길지어다.
그러면 그대는 한낱 보잘 것 없는 태아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 순간, 그의 이성은 사라졌다.
그 태양의 반짝임은 베일에 가리어졌다.
온갖 혼돈이 그 지성 속을 휘저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질서와 풍요가 넘치던 산 신전.
그 천장 아래선 헤아릴 수 없는 화려함이 극을 이루었건만
마치 열쇠 잃은 지하실처럼
침묵과 어둠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그는 길에 방황하는 짐승처럼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여름인지
겨울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들판을 쏘다니게 되자
폐품처럼 더럽고 보잘 것 없는 무용지물
어린 아이들의 놀림감과 웃음거리일
뿐.
* 13세기의 한 일화가 이 시의 원천인데, 그 이야기를 보들레르는 미슐레의 프랑스 역사에서 읽었거나, 그 출전인 카지미르 우댕의 저서(1722년) 속에서 읽은 것 같다 한다.
[ 아름다움 ]
나는 아름답도다. 오, 인간들이여!
돌의 꿈처럼 아무나 번갈아 상처 입은 내 젖가슴은
물질처럼 영원하고 말없는
사랑은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 넣기 위해 생겨난 것
나는 수수께끼의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고
눈과 같은 마음은 백조의 흰빛에 연결한다.
나는 선(線)들을 옮겨 놓는 움직임을
싫어하고
나는 결코 우는 법도 없고 또 웃지도 않는다.
아주 우람한 기념상에서 빌려 온 듯한
장엄한 나의 자세 앞에서 시인들은
엄격한 탐구에 일생을 보내리라.
왜냐하면 나는 이 온순한 연인들을 홀리기 위해
만물을 한결 미화하는 정결한 거울을 가졌기에
그것은 나의 눈, 영원한 빛을 지닌
커다란 두 눈!
[ 이상 ]
나같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건
비천한 시대의 썩어 빠진 사물인
가두리 장식 달린 미인도도 아니요,
반장화 신은 발도,
캐스타네츠 낀 손가락도 아니라오.
위황병에 걸린 시인 가르바니에게나 맡기려오.
병원에서 재잘대는 그 미녀들의 무리들은
나의 붉은 이상을 닮은 꽃송이를
창백한
장미들 속에서 찾을 길 없으리니
심연처럼 깊은 내 마음에 필요한 건
바로 그때, 맥베드 부인, 죄악에 맞서는 꿋꿋한 넋
질풍의 풍토에도 꽃이 핀 에쉴르의
꿈
아니면 너, 거대한 밤 미켈란젤로의 딸
거인들의 입술이 스쳐간 네 젖가슴을
야릇한 자세로 태연하게 비트는 너로구나!
* 가르바니 - 풍속 묘사에 뛰어난 보들레르와 같은 시대의 풍자 화가.
* 에쉴르 - 에스퀼러스, 그리스의 비극 시인.
*
거대한 밤 - 그리스 신화에서 '밤'은 거인들의 어머니이다.
[ 거녀(巨女) ]
자연이 당당한 기백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들을 배던 시절에
나는 젊은 거녀 곁에서 살고 싶었다.
여왕의 발치에서
주색에 빠진 고양이처럼
그녀의 육체가 영혼과 더불어 피어나고
끔찍한 노름판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며
그녀의 가슴이 음침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지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즐겨 점쳤으리라.
그녀의 멋진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고
그녀의 거대한 무릎 비탈 위로 기어오르며
때로는 여름날, 몸에 해로운 햇볕에
지친 그녀가 들판에 가로질러 몸을 누이면
나는 그 젖가슴 그늘 아래서 한가로이 잠을 자고 싶었으리라.
마치 평화로운 마을이
산기슭에 잠들 듯이.
2부 파리풍경
[ 풍경 ]
나의 목가 정하게 읊기 위하여
점성가처럼, 하늘 가까이 드러누워
종각 이웃하여 꿈꾸며 듣고 싶어라.
바람이 싣고 오는
엄숙한 성가들을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내 높은 다락방에서
나는 보리라, 노래하며 재잘대는 아틀리에를
굴뚝들, 종각들, 이
도시의 돛대들을
또 영원을 꿈꾸게 하는 저 거대한 하늘을.
안개 사이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즐거웁구나.
창공에 별이 뜨고, 창가에는 불이 켜지는 것
강 줄기 같은 매연은 푸른 하늘로
솟아오르고
달님이 제 창백한 광채를 내려 비추는 것
나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보리라.
또 단조로운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면
사방 휘장과 덧문을 내려 닫고
방 속에서 꿈 같은 궁전을 세우리라.
그리하여 내가 꿈 속에서 보는 것은 푸르스름한
수평선
정원, 대리석 석상들 틈에서 눈물짓는 분수들
입맞춤, 아침 저녁 노래하는 새들
그리고 목가에서나 노래할 더없이 천진난만한
것들
소요가 제아무리 내 유리창에 폭풍을 몰아쳐도
내 이마를 책상에서 들게 하진 못하리라.
왜냐하면 내 의지의 힘으로 '봄'을
불러일으키고
내 가슴에서 태양을 끌어내어
타오르는 생각들로 따스한 분위 만들어 내는
그러한 쾌락에 내가 잠겨 있을 테니.
[ 태양 ]
도시와 들판, 지붕과 밀밭 위로
혹독한 태양이 강렬하게 내려 쬘 때
남모를 음란한 짓 가리는 들창들이
누추한 집집마다 달려
있는 옛 교외 길로
외로이 내 환상의 검술을 닦으러 나는 간다.
거리의 구석마다 우연의 운을 맡아가며
포석 위에 발을 부딪치는
낱말 위에서 비틀거리고
이따끔 오래 전부터 꿈꾸던 싯귀를 만나기도 하면서.
우리를 먹여 주는 저 아버지, 위황병의 원수
태양은 들판의 장미처럼 시를 잠 깨우고
근심 걱정을 하늘로 증발시키고
머리
속과 벌집 속을 꿀로 가득채운다.
목발 짚은 사람들을 다시 젊게 하고
소녀들처럼 즐겁고 다감하게 만들고
언제나 꽃피고 싶은
불멸의 영혼 속에
자라서 익은 수확이 되라고 명하는 것은 태양!
시인과 마찬가지로, 그가 도시에 내려갈 때엔
아무리 착한 사물의 운명도 귀하게 되고
몸종도 없이 사뿐히 임금처럼
들어가신다.
그 어느 병원이든, 그 어느 궁궐이든.
[ 빨간 머리 거지 계집애에게 ]
빨간 머리, 흰 살결의 계집애여
네 헤어진 옷 구멍으로
가난과 아름다움이 내비친다.
초라한 시인인 나에게는
죽은깨
투성이인
허약한 네 젊은 육체가 사랑스럽구나.
소설에 나오는 여왕이 신은
빌로도 반장화보다
더 멋지게 네 무거운 나막신을 신고 있구나.
그 누더기 대신에 길고 요란하게 주름 잡힌
화려한 궁정 예복을 네 발꿈치 위로
질질 끌고 있다면
구멍난 긴 양말 대신에
난봉꾼의 눈요기감으로
네 다리 위에서 황금의 칼이 번쩍거렸으면
헐겁게 묶은 옷고름 때문에
네 아름다운 두 젖가슴이
반짝이는 눈빛처럼 황홀하게
우리 같은 죄인에게 드러나 보였으면.
네가 옷을 벗을 때에는
네 두 팔은 수줍어 망설이고
장난꾸러기 손가락일랑 완강히 뿌리쳤으면.
제일 아름답고 투명한 진주
벨로의 사랑의 소넷
사랑에 빠진 사내들로부터
끊임없이 네게 바쳐지고
시나 주워 읊는 자의 종이 되어
갓 나온 시집을 네게 증정하고
계단 아래서 네 신발을 우러러보며
요행을 바라는 수많은 몸종들
숱한 영주들과 롱사르 같은 시인들이
재미삼아 산뜻한 네 규방을 염탐할 테지!
너는 잠자리 속에서 백합보다 더 많은 입맞춤을 받고
많은 발로아 왕족들로 네 율법 아래
복종케 하리라.
---하지만 지금, 너는 네거리의
어느 '요리집' 문전에 가서
버려진 낡은 쓰레기 몇 점을 구걸하는 신세
이십 구전짜리 싸구려 보석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너는 가누나.
오! 미안해! 그것마저 선물로 네게 줄 수 없으니!
그러니 가거라, 야윈 네 알몸밖에는
향수나 진주나 금강석으로
그 어떤 치장도 하지 않은
오, 내 아름다운 계집애여!
[ 백조 - 빅토르 위고에게 ]
1
앙드로마크 나는 그대를 생각해! 저 작은 강은
과부인 그대의 한없이 숭고한 고통이
그 옛날 찬란히 빛나던 가련하고 쓸쓸한
거울
그대의 눈물로 불어난 이 엉터리 시모이 강은
내가 새로운 카루젤 광장을 지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내 풍부한 기억력을 부채질해 주었다.
옛 파리 도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도다.
(도시의 모양은 슬프게도,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구나.)
오로지 내 마음속으로만 그려볼 뿐, 진을 친 듯한 저 모든 판자집들
윤곽만 잡힌 기둥들과 통나무 더미들
잡초들, 웅덩이 물때
끼어 파래진 큼직한 돌멩이들
그리고 유리창에 반짝이는 흩어진 골동품들을
그 옛날 거기엔 동물원이 있었지.
거기서, 어느날 아침 나는 보았다.
차가운 맑은 하늘 아래 '노동'이 잠을 깨고
오물
처리장이 조용한 대기 속에 검은 연기 뿜어대는 시각에
둥지에 빠져 나온 백조 한 마리
바싹 마른 포도를 제 발로 문지르며
울퉁불퉁한 땅 위에 제 하얀 깃을 끌고 있는 것을
물도
없는 개울가에서 그 새는 부리를 열고
먼지 속에 안절부절 제 날개 멱감기며
고향의 아름다운 호수 그리는 마음 가득하여, 말하기를
물이여, 헌데 넌 언제 비되어
오려니? 넌 언제나 울려 오련, 천둥이여?
이상야릇한 운명의 신화, 이 불행한 짐승은
오비드의 인간처럼 이따끔 하늘을 향해
빈정거리는 듯 자연스럽게 푸른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향해 저주를 퍼붓기라도
하듯이
떨리는 목 위에 제 목마른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2
파리는 변하기도 하지! 그러나 내 우울 속에선 아무것도
꼼짝하지 않는구나! 새 궁궐도, 쌓아올린 발판도, 돌더미도
성문 밖 낡은
고장도, 모두 나에겐 알레고리가 되고
정다운 내 추억은 바위보다 더 무겁도다.
이처럼 저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하나의 영상이 나를 괴롭힌다.
나는 생각한다, 광기 어린 몸짓을 하고
추방당한 자처럼,
어리숙하나 고적한 모습으로
끊임없는 욕망에 시달리는 나의 큰 백조를! 그런 후에 앙드로마크
나는 그대를 생각한다, 위대한 낭군 품에서
천한 가축처럼, 뻔뻔한 피류스의 손에 떠어져
텅 빈 무덤 곁에 넋을 잃고 꾸부리고
있는 그대
아! 헥토리의 미망인, 그리고 헬레뉴스의 아내여;
나는 생각한다, 폐병 들어 수척한 모습을 하고
진흙을 질퍽거리며 살기 있는 눈초리로
아득한 안개 벽 너머에서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사라진 야자수 숲을 찾고 있는 그 흑인 여자를.
다시는 영영 되찾지 못할 것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을 눈물로 목을 축이고
착한 암이리같이 '고뇌'의 젖을 빠는
사람들을!
꽃들처럼 시들어 가는 말라빠진 고아들을!
그리하여 내 마음 은둔하는 숲속에
오랜 '추억' 뿔피리 숨가쁘게 울려 퍼지누나!
나는 생각한다, 외딴 섬에 잊혀진
수부들을
포로들과 패배자들을!……그밖에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 일곱 늙은이들 ]
개미떼처럼 우글대는 도시, 꿈이 가득한 도시
한낮에도 도깨비가 행인에게 달라붙는다!
신비는 도처의 수수액처럼
흘러내린다,
힘센 거인의 좁다란 맥관 속으로.
어느날 아침, 쓸쓸한 거리에서
안개로 더 높아 보이던 집들이
물이 불어난 강의 둑같이 높이 솟아오르고
배우의 영혼을 닯은
배경처럼
누렇고 구질스런 안개가 사방에 넘쳐 흐를 때
나는 주역을 맡은 사나이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벌써 지쳐 버린 내 영혼과
말씨름을 하면서
무거운 달구지에 실려 흔들리며 성문 밖 길을 가고 있었다.
느닷없이 한 늙은이, 침침한 하늘빛의
어둡고 누런 누더기를 걸치고
그 눈 속에 심술궂은 빛만 어리지 않았다면
빗발치듯
동냥을 받았을 그런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눈동자는 담즙 속에 잠긴 듯하고
그의 시선은 서릿발 같고
길다란 턱수염은 칼처럼 뻣뻣하여
유다의
수염처럼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의 육신은 굽은 것이 아니라 두 동강이 난 듯하고
등뼈는 다리와 완전히 직각을 이루니
그 몰골에 걸맞는 지팡이는
불구의
네 발 짐승 아니면 세 발 달린 유태인 같은
모습에 어색한 걸음걸이를 갖게 하였다.
진눈깨비와 진흙 속을 허우적거리며 그는 가고 있었다.
헌 신발로 죽은 사람들을 짓밟기라도
하듯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다기보다 적의를 품고서,
그를 닮은 노파가 그를 따랐다. 수염도, 눈도, 등도, 지팡도, 누더기도
어떤 모습도 다를 게 없었다. 똑같은 지옥에서 나온
백
살 먹은 쌍둥이, 그리하여 이 두 괴상한 유령들은
같은 걸음걸이로 미지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무슨 음흉한 음모의 대상이 되어 있었나,
아니 그 어떤 짓궂은 운명이 이처럼 나를 욕보였던가?
시시각각으로 자꾸만
수가 늘어가는
이 불길한 늙은이를 일곱 번 헤아렸으니!
내 불안한 마음 비웃고
나와 같은 전율을 느끼지 않는 자여 생각해 보라.
저렇게 늙어빠지긴 했어도, 그 흉측한 일곱
괴물은
영원 불멸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죽지 않아도 내가 여덟 번째를 바라볼 수 있었을까.
얄밉고 숙명적인, 냉혹한 쌍둥이를
저 자신의 아들이자 애비인, 메스꺼운
불사조를?
---그러나 나는 지옥 같은 그 행렬에서 등을 돌렸다.
사물이 겹쳐 보이는 주정뱅이처럼 격정에 쌓여
나는 귀가하여 집 문을 닫았다.
질겁을 하고 병든 것처럼 사지가 떨리고, 신비와
부조리로
정신은 충격을 받아, 열이 나고 당황하여!
내 이성의 키를 잡으려 하나 헛된 일
폭풍은 유희하듯 그 노력에 훼방 놓고
내 영혼은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괴물같이
막막한 바다 위에 떠도는
돛 잃은 낡은 배처럼!
[ 가여운 노파들 - 빅토르 위고에게 ]
1
오래 된 도시의 꼬불꼬불한 주름 속에서
모든 것이 공포마저도, 매혹으로 변하는 곳에서
나는 살핀다, 나의 천성 어쩔 수
없어
늙어빠져도 매력적인 요상한 인간들을
저 쭈글쭈글한 괴물들도 옛날엔 여인들
에포닌느 아니면 라이스 같은!
꼬부라진 곱사등에 뒤틀린 괴물들일지언정, 저들을
사랑하자꾸나!
아직 영혼은 있으리니
닳아 구멍난 속치마를 입고, 냉기 도는 천 조각을 걸치고
그들은 기어간다, 심통 난 북풍을 맞으며
승합마차 굴러가는 요란한
소리에 바들바들 떨며
꽃이나 그림 수수께끼 수놓은 작은 손가방을
비장물인 양, 그들 옆구리에 꼭 끼고서
그들은 꼭두각시처럼, 아장대며 걸어가고
상처받은 짐승처럼 몸을 끌며 기어가며
또는 '마귀'가 매달려 사정없이 치는
가엾은
방울처럼, 억지 춤을 추는구나!
찌들었으나, 눈은 송곳처럼 꿰뚫어 보고
밤중에 물이 고인 웅덩이처럼 번쩍인다.
무엇이든 반짝이는 걸 보면 놀라
깔깔대는
소녀 같은 성스러운 눈빛을 그들은 지니고 있다.
---그대들은 관찰해 보았는가, 수많은 노파들의 관이
거의 어린아이 관이라 할 정도로 작다는 것을?
현명한 '죽음'은 이처럼
똑같은 관 속에
야릇하고 흥미진진한 취향의 상징을 담고 있어서
개미떼처럼 우글대는 파리의 화폭 속을
허약한 유령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면
언제나 저 가냘픈 노파는 새로운 요람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가는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주화 잃은 사지의 몰골을 보며
기하학적 명상에 잠겨 나는 생각해본다.
저 몸뚱이 전부를 담을 관을 만들기
위해선
몇 번이나 일꾼이 관 형태를 바꾸어야 할까.
그 눈들은 수백만의 얼굴로 이루어진 셈
식은 금속이 반짝이는 용광로의 아궁이......
신비스런 그 눈들은 엄한 '불운'의 젖을
먹고 자란 사람에겐
억제 못할 매력을 가지고 있다!
2
죽은 프라스키티의 사랑에 빠진 베스타의 무녀
아! 땅속에 묻힌 그녀의 후견인만이 그 이름을 아는 탈리의 여승
일찍이 티볼리의 꽃
그늘 아래서 바람 피우던 그 유명한 논다니
그 모든 여자가 나를 취하게 하는구나!
허나 그 연약한 여인들 중에는 고통으로 꿀을 만들어 내며
제 날개 빌려 준 '헌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다.
힘센 취두마체(鷲頭馬體)여, 하늘에까지 나를 데려다 다오!
한 여자는 조국 때문에 불행을 겪고
한 여자는 남편 때문에 고통을 짊어졌고
한 여자는 자식 때문에 꿰뚫린 '마돈나'가
되었으니
모두가 눈물로 강을 이룰 수 있었으리!
3
아! 얼마나 나는 그 가엾은 노파들의 뒤를 따랐던가!
그 중 하나는 석양이 새빨간 상처를 내어
하늘을 피로 물들이는
시각에
생각에 잠겨 홀로 긴 의자에 앉아서
이따끔 우리네 공원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금관악기 요란한 군악대의 연주를 들었다.
군악소리는 사람들의 기운이 되살아나는 듯한
금빛 황혼에
그 어떤 영웅심을 시민들 가슴속에 부어 주었다.
아직도 꼿꼿하고, 자신만만하고 단정한 저 여자는
경쾌한 군가를 개걸스레 마시고 있었다.
이따끔 눈은 늙은 독수리 눈처럼
열리고
대리석 같은 이마는 월계수로 단장하기에 알맞는 듯했다!
4
이와 같이 그대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불평없이
번화한 도시의 혼돈을 뚫고 걸어간다.
그 옛날 모든 사람들 입에 그 이름
오르내리던
가슴에 피를 흘리는 어머니여, 창녀여, 아니 성녀여,
그 옛날 미모와 영광에 휩싸여 있던 그대들
이제 그대들을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구나!
무례한 주정뱅이가 지나가는 그대들에게
가소로운 추파로 욕되게 하고
비겁하고 못생긴 애새끼는 그대 발치에서 촐랑댄다.
존재하는 것이 창피한 듯, 쪼그라진 그림자들
겁이 많아, 등이 굽은 그대들은 담벼락을 따라간다.
하나 그대들을 보고 인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얄궂은 운명이여!
영원한 세상을 그리는 다 된 인간 찌꺼기들이여!
그러나 나, 멀리서 그대들을 다정스레 지켜보며
불안한 시선 뚫어지게 위태로운 그대 발걸음을 바라보는 나는
마치 그대의 아버지인
양, 오, 이상야릇하게도!
그대들 몰래 은밀한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나는 본다, 그대들의 첫사랑의 열정 되살아남을
어둡고 빛나던 그대들의 잃어버린 날들을 나는 보았다.
내 마음의 수많은 분자들은
그대들의 온갖 악덕을 즐긴다!
내 영혼은 그대들의 온갖 미덕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인생의 폐허여! 내 가족이여! 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두뇌여!
나는 저녁마다 그대들에게 엄숙한 고별을 보낸다.
하나님의
무서운 손톱에 짓눌린, 팔순의 이브들이여,
내일이면 그대들은 어디에서 방황하려나?
* 에포닌느 - 옛 프랑스 골을 로마의 지배권에서 해방시키려던 유리우스 사비누스의 아내. 절개 있는 여성의 상징
* 라이스 -
그리스의 유명한 바람둥이
* 프라스키티 - 1837년 폐쇄당한 파라의 도박장
* 베스타의 무녀 - 로마시대 도시의 수호 여신
베스타에게 시중든 처녀
* 탈리 - 희극과 목가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세 여신 중의 하나
* 티볼리 -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에 가장
번창했던 대중 유흥장
* 취두마체 - 장독수리의 머리에 말 몸뚱이를 한 전설적인 괴물
[ 장님들 ]
내 영혼이여, 저들을 보라, 정말 끔찍스럽구나!
마네킹 같기도 하고, 어딘지 우스꽝스럽고
몽유병 환자들처럼 섬뜩하며 야릇한
그들은
어두운 눈알로 어딘지 모르게 쏘아본다.
거룩한 빛이 떠나가 버린 그들의 눈들은
마치 먼 곳을 바라보는 듯, 계속 하늘로 쳐들고 있어
그들의 묵직한 머리가 생각에 잠긴
듯이
포도 위로 숙여지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이처럼 끝없는 어둠을 지나가고 있다.
이 영원한 침묵의 형제를, 오, 도시여!
네가 잔인할이만큼 쾌락에 도취되어
우리네 주위에서 노래하고 깔깔대며 울부짖는
동안에
보라! 나 역시 몸을 끌며 간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얼이 빠져서
나는 생각해본다. 무얼 하늘에서 찾고 있을까, 저 모든
장님들은?
[ 지나간 여인에게 ]
거리는 귀 아프게 내 주위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상복을 입고 장엄한 고통에 잠긴
한 여인이 지나갔다, 호사스런 한쪽 손으로
크고 날씬한
꽃장식 달린 치마 단을 들어 올려 흔들어댄다.
매끈하고 고상한 상(像) 같은 그녀의 다리 내보이며
나는 넋 잃은 사람처럼 몸을 뒤틀며 들이켰다.
태풍을 품고 있는 납빛
하늘
그녀의 눈속에서 유혹적인 감미로움과 목숨 앗아가는 즐거움을
한줄기 번갯불……그런 다음 밤이로다!
---눈길이 순식간에 나를 되살리고 사라진 미녀여!
오직 영원 속에서만 그대를 볼
것인가?
다른 곳에, 여기에서 아주 멀리에서! 너무 늦었다! 아마 영영 못 만날지도!
그대 사라진 곳 내가 모르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대
알지 못하니
오, 나 그대를 사랑했으리! 잘 알고 있었듯이!
[ 밭가는 해골 ]
1
송장 같은 수많은 책들이
고대 미이라처럼 잠자고 있는
먼지투성이 저 강둑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해부도.
그 주제 비록 구슬프나
어느 늙은 예술가의 근엄함과 박식함이
'아름다움'을 전해 준 그 소묘 속에서
우리는 본다. '박피 표본'과 '해골'들
그것들이 농부처럼 삽질을 하는 모습은
그림이 풍기는 신비로운 공포를 한층 더 가하여
준다.
2
체념 속에 침울해진 천민들이여,
너희들의 등뼈나 껍질 벗겨진
근육의 온 힘 다 바쳐
파 뒤집는 그 땅에서
말해 보라, 납골당에서 끌려나온 고역수여,
무슨 이상스런 추수 끌어내어
그 어느 농가의 광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운명의 두렵고 명확한 표징이여!)
너희들은 보여 주려는가, 그 무덤 속에서마저
약속된 잠이 보장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는 허무마저 배반자임을
모든 것, 죽음마저도, 우리를 속이고
아, 영원히 우리는 어느 미지의 나라에서
딱딱한 땅 껍질을 벗겨야 하고
우리 피투성이 맨발을 딛고
무거운 가래를 밀어야 할 것임을.
[ 저녁 노을 ]
지금 매혹의 저녁, 죄인의 벗
저녁은 다가온다. 공범자처럼, 발소리 죽여 가며
하늘은 커다란 규방처럼 서서히 닫히고
성급한
사람은 야수로 변한다.
오, 저녁, 자기의 팔이 거짓없이
오늘 우린 일했노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감당하는
사랑스런 저녁---그 저녁은
어루만진다.
사나운 고통으로 시달리는 마음들을
이마가 무거운 끈기 있는 학자
제 잠자리 찾아가는 등 굽은 일꾼을
그 사이
대기 속엔 해로운 악마들이
사업가들처럼 부시시 잠에서 깨어나 날아다니고
덧문과 차양에 와서 부딪친다.
바람이 괴롭히는 어스름
불빛을 뚫고
매음이 이 거리 저 거리에 불을 켠다.
개미집처럼 나올 구멍을 뚫어 놓는다.
습격을 꾀하는 적군과도
같이
사방에 은밀한 길을 파헤친다.
인간에게 먹을 것을 훔쳐내는 구더기처럼
매음은 진창의 도시 복판에서 우글거린다.
여기저기 들리는 건 지글거리는 부엌의 소음
와글거리는 극장들, 쿵작거리는 오케스타라들
노름의 재미 무르익는 공동
탁자는
창녀와 협잡꾼과 그 공범자들로 가득차고
휴식도 없고 인정도 없는 도둑들
그들도 이내 제 작업 시작하여
며칠의 식량과
정부의 옷 값 위해
살그머니 문과 금고를 비틀어 낸다.
내 영혼이여, 이 엄숙한 순간에 명상에 잠기어라.
이 아우성 소리에 네 귀를 막아라,
지금은 환자들의 고통이 심해지는
시각!
어두운 밤이 그들의 목을 조른다.
그들은 명(命)을 마치고 깊숙한 공동묘지로 내려간다.
병원은 그들의 한숨으로 가득차
있고---몇 명은
저녁에, 난로가, 사랑하는 이 곁에
향긋한 수프를 찾아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
더욱이 그들 대개는 아예
가정적인 단란함을 알지 못했으니
일찍이 살았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 도박 ]
낡은 안락의자에 앉은 늙은 기생들은
파리한 얼굴의 눈썹을, 아양떠는 요부의 눈길로
선웃음쳐 가며, 보석과 금속에 짤랑대는
소리를
그녀들의 야윈 귀에 울려 퍼지게 한다.
초록 융단의 노름판을 둘러앉은 입술 없는 얼굴들,
핏기 가신 입술들, 이빨 없는 주걱턱
그리고 빈 호주머니 뒤적거리거나 가슴
두근거리는
지독한 열병으로 떨리는 손가락들,
때묻은 천장 아래 매달린 한 줄의 퇴색한 샹들리에
그리고 육중한 캥테등은 희미한 불빛을 피땀 흘려 얻은
대가를 탕진하려 온
저명한 시인의 어두운 이마를 비춰주고 있다.
이것은 어느날 밤 꿈속에서 내 명철한 눈 아래
펼쳐진 내가 본 흑색 화폭,
나 자신은 조용한 동굴 한구석에서
팔꿈치를 괴고
추워하며, 말없이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끈질긴 열정 부러워하고
그 늙은 창녀들의 침통한 쾌락을 부러워하고
또한 모두가 내 면전에서, 옛날 제
명예나
혹은 제 미모를 호기있게 거래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한데 내 마음은 깜짝 놀랐다. 수많은 가련한 인간을 부러워함에
그들은 벌어진 심연으로 정신없이 달려가고
제 피에 취하여 결국은
죽음보다 고뇌를
허무보다 지옥을 더 좋아하는 것을!
[ 죽음의 댄스 ]
큼직한 꽃다발, 손수건, 그리고 장갑을 가지고
산 사람인양, 귀태나는 몸맵시를 뽐내는 그녀에겐
괴상한 자태 지닌 야윈 교사스런
여성의
여유있고 명랑한 품위가 있다.
이보다 더 날씬한 모습을 무도회에서 본 적이 있는가?
품위있게 풍성하나, 너무 헐렁한 그 옷은
꽃처럼 어여뿐, 술 달린 신이
감싸 주는
앙상한 발 위에 헐렁하게 흘러내린다.
바윗돌에 제 몸 부비는 음탕한 시냇물처럼
쇄골 기슭에서 나풀대는 주름끈은
그녀가 감추려 드는 처량한 젖가슴을
조롱과
비웃음에서 순결하게 지켜 준다.
깊숙한 두 눈, 공허와 어둠으로 만들어지고
멋부려 꽃을 올려 놓은 그녀의 머리는
잔약한 등뼈 위에서 하늘하늘 춤춘다.
오,
얼빠진 듯 치장한 허무의 매력이여!
육체에 도취한 연인들, 표현 못할 인간의
뼈대가 가진 운치를 알지 못하는 그들은
너를 부를 테지, 하나의 삽화라고
키 큰
해골이여, 넌 내 가장 귀한 취미에 잘 들어맞는구나.
너는 그 충격적인 찌푸린 모습을 하고 '삶'의 축제를
휘저으러 오느냐? 아니면 어느 오랜 욕망이
산 해골 바가지 너를 또다시
충동하여
방정맞은 널, '쾌락'의 절정에 밀어넣던가?
바이올린 노래에, 촛불의 불꽃에
빈정대는 네 악몽 쫓아내고 싶었던가.
또한 네 심장에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을
주신제의
술도랑에 와서 식혀 달라는 것인가?
어리석음과 잘못이 마르지 않는 샘이여!
해묵은 고뇌의 영원한 증류기여!
네 갈비뼈의 구부정한 격자 너머로
나는 본다,
아직도 기어 다니는 목마른 독사.
내 진정 말하노니, 너의 교태로
그 애쓴 보람 없을까 두려워라.
이 인간들 중 그 누가 이 빈정거림 알아들을까?
공포의
매력에 도취하는 건 오직 강자들 뿐!
끔찍스런 생각 가득찬 네 심오한 두 눈은
현기증을 자아내고, 조심스럽게 춤추는 사내는
쓰디쓴 구역질하지 않고는, 네 서른 두
이빨의
영원한 미소를 바라보지 못하리라.
하지만 누구인들 제 속에 해골을 품지 않았고
그 누가 무덤의 것으로 양육되지 않았는가?
향수도, 옷도, 화장도 무슨 소용
있는가?
아름다운 것도 언젠가는 추한 것이 되고 말리니.
코가 없는 무기(舞妓)여, 억제 못할 위안부여.
그러니 눈 가리고 춤추는 저들에게 말하라.
오만한 도련님들, 아무리 분과 연지로
치장을 했어도
그대들 모두가 '죽음'의 냄새 풍겨요! 오, 사향 바른 해골들이여.
시들은 안티노우스, 수염 없는 댄디
니스 칠한 송장, 백발의 색골들이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주검의 춤이
알 수 없는
곳으로 그대들을 끌고 가는구나!
차가운 세느 강 둑에서 이글거리는 갠지스 강가에까지
인간 무리들이 넋을 잃고 뛰논다.
천장의 구멍에는 '천사'의 나팔이 시커먼
나팔총처럼
불길하게 입을 쩍 벌리고 있음을 보지 못한 채
어느 고장, 어느 태양 아래서도, 가소로운 '인생'들이여,
'죽음'은 그대들의 비비적대는 몸짓을 즐거웁게 바라보고
그리고 종종,
그대들처럼 몸에 몰약 냄새 피우며
그대들의 광란에 제 빈정거림 뒤섞는다.
* 안티노우스 - 로마의 황제 아드리안의 몸종으로 총애를 받은 아름다운 소녀.
[ 거짓에의 사랑 ]
오, 안일한 내 사랑이여, 천장에서 부서지는
악기들의 곡조에 어울리는 느린 발걸음 내디디며
그윽한 눈에 권태의 빛
띠고
지나가는 그대를 내가 볼 때에
가스 등불에 물들고, 시름 겨운 자세로 미화되어
저녁의 횃불에 새벽이 불그스레 동터 오는
창백한 그대 이마와 초상화의
눈처럼
매혹적인 그대의 눈을 내가 바라볼 때에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아름답도다. 그리고 저 기묘한 싱싱함이여!'
육중한 왕실의 탑과 같은 묵직한 추억이
그녀 머리에 관을
씌우고, 복숭아처럼 달콤하고 물기찬 그녀 마음은
무르익은 육체와 더불어 오묘한 사랑을 기다린다.
그대는 비길 데 없는 맛을 담은 가을 과실인가?
누군가의 눈물 기다리는 구슬픈 꽃병인가,
아니면 멀고 먼 오아시스를 꿈꾸게 하는
향기인가?
쓰다듬는 베개인가, 그도 아니면 꽃 바구니인가?
나는 알고 있다. 소중한 비밀 전혀 감추지 않은
견줄 데 없이 우울한 눈들도 있음을
보석 없는 상자, 유물 없는 큰 유물
상패
오 '하늘'보다 더 비고, 더 심오한 눈이여!
그러나 진실을 외면하는 내 마음 즐겨 주기 위해선
그대 외양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대가 어리석든 무관심하든 무슨
상관?
가면이건 겉치레건
반가와서 나는 몹시 좋구나, 그대의 아름다움이.
[ 나는 잊지 않았네 ]
나는 잊지 않았네, 시내 근교의
작으나마 조용한 하얀 우리 집을
포몬느 석고상과 오래된 비너스상은
빈약한 숲속에서 알몸을
감추고
저녁이면 햇님이, 유연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햇살이 와서 부딪치는 유리창 뒤에서
신기로운 하늘에 크게 뚫린
눈알처럼
우리네 길고도 조용한 저녁 식사를 지켜보는 듯
소박한 식탁보와 세루 커텐 위에
커다란 촛불 같은 아름다운 반사광을 한껏
펼치면서.
* 포몬느 - 로마 신화의 정원과 과실의 여신.
[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씨 ]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씨 갸륵한 하녀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잔디 아래 잠들어 있으니
우리, 그녀 앞에 꽃다발을 놓아야
하지.
죽은 사람들, 가엾은 그들에겐 큰 고통이 있다.
10월의 묵은 나무 쳐버리는 음산한 바람이
그들의 대리석 묘비 둘레에
휘몰아칠 때
진정, 그들은 제대로 이불에 싸여 포근히 잠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리.
그럴 때, 그들은 어두운 악몽에
찢기고
잠자리를 같이 나눌 동반자도, 다정한 이야기거리도 없이
구더기에 시달린 얼어붙은 늙은 해골되어
무덤 울타리에 매달린 시든
꽃가지를 갈아 줄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이, 쌓인 겨울 눈이
녹아 방울져 내리고 세월이 흘러감을 느낄 따름.
벽난로의 장작불이 탁탁 튀기며 노래부를 때
만일 저녁마다 조용히 그녀가 안락의자에 와서 앉는 걸 본다면
그녀가 시퍼렇게 추운
섣달 밤에 영원한 제 잠자리 속에서 빠져나와
예절 바르게 내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모성어린 눈으로 다 큰 아이를 대견스럽게
바라본다면
그 움푹 패인 눈까풀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나는 이 경건한 영혼에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으리?
*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씩 갸륵한 하녀 - 보들레르의 어머니의 하녀였던 Marieett로서, 그녀는 어린 시인을 대단히 사랑해 주었다.
[ 안개와 비 ]
오, 가을의 종말, 겨울, 흙탕물에 젖은 봄
졸음 오는 계절들이여!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찬양하노라.
안개 서린 수의와 흐릿한
무덤으로
이처럼 내 마음과 머리를 감싸 주기에
찬바람이 노닐고, 기나긴 밤에
바람개비 목이 쉬는 이 광막한 벌판에서
이 내 마음 따스한 봄철보다 더 활짝 펴리라.
까마귀
같은 제 검은 날개를
음산한 것들로 가득찬 이 마음에는
오래 전부터 서리가 내리는 이 마음에는
오, 희끄무레한 계절, 우리네 풍토의 여왕이여.
너희들, 창백한 어둠의 한결 같은 모습보다도
더 정다운 것 없구나---달 없는 밤에, 단 둘이
모험의 침상에서 괴로움을 잠재우는
것밖에는.
[ 파리의 꿈 ]
1
인간이 일찍이 본 일 없는
이 끔찍한 풍경의
어렴풋하고 아득한 영상이
오늘 아침도 나를 매혹한다.
짙은 기적들로 가득하도다!
야릇한 변덕을 부려
나는 이 풍경에서
고르지 못한 식물을 몰아내고
자만심에 가득찬 화가가 되어
내 그림 속에서 스스로 맛보고 있었다.
금속과 대리석과 물이 이루는
황홀한 단조로움을
그것으로 무수한 계단과 회랑을 가진 바벨탑
하나의 끝없는 궁궐이었다.
광택 없는 혹은 윤나는 금수반들 속에
떨어지는 폭포와
분수로 가득하고
또한 웅대한 폭포수는
수정의 커텐인 양
금속의 절벽에
눈부시게 걸려 있었다.
수목은 아니지만 주랑들이
잠자는 연못을 둘러싸고
거기엔 거대한 물의 요정들이
여인들처럼, 제 얼굴 비춰보고 있었다.
분홍빛 초록빛 강둑 사이로
푸르스름한 물결이 흘러내렸다.
수백만 리에 걸쳐
세상의 끝을 향하여,
그것은 들어보지도 못한 보석이며
마술의 물결이
그것은 자신이 반사하는 모든 것으로
눈부시게 반짝이는 광막한 거울!
소리없이 도도하게
창공에 흐르는 갠지스강은
금강석의 심연 속에
제 항아리의 보물 쏟고 있었다.
이 꿈나라의 건축사인 나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보석의 터널 아래로
내 설계도를 따라 펼쳐 놓았다.
그리하여 모두가, 검은 색마저도
밝게 윤이 나고, 무지개가 되고
액체는 결정된 광채 속에서
제 영광을 아로새기고
있었다.
게다가, 하늘 저 끝까지 돌아보아도
이 기적을 비춰 줄 수 있고
제 자신의 빛으로 빛을 발하는
별도 없고 태양의 흔적도
없도다!
그리하여 이 생동하는 경이 위에는
영원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이 놀라운 새로움이여!
모두가 눈을 위한 것, 귀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2
불빛으로 가득찼던 내 눈을 뜨자,
내가 본 것은 끔찍스런 내 누추한 방,
정신이 들면서 내가 느낀 것은
저주받은 번뇌의
날카로운 칼날
벽시계는 불길하고 투박한 소리로
거칠게 정오를 치고 있었다.
마비된 이 쓸쓸한 세상에
하늘은 어둠을 퍼붓고 있었다.
* 이 마지막 두 절에 관해서는 「파리의 우울」 '이중의 방'을 참조할 것.
[ 어스름 새벽 ]
기상 나팔은 병사 마당에서 울리고
아침 바람은 가로등 위로 불고 있었다.
때로 바로 악몽이 벌떼처럼 떼지어 와서
갈색 머리
소년들을 베개 위에 잡아 비틀고
껌벅거리는 핏발선 눈처럼
등불은 햇빛에 붉은 얼룩을 지우는 시간,
거칠고 육중한 몸무게에 짓눌린
영혼은
등불과 햇빛의 싸움을 흉내내는 시간
산들바람이 닦아 주는 눈물젖은 얼굴처럼
대기는 쓰러져 가는 것들의 전율로 가득
차면
사내는 글쓰기에, 계집은 사랑하기에 지친다.
여기저기 집들은 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쾌락 쫓는 계집들은, 납빛 눈까풀을 하고
입을 헤벌리고 얼빠진 잠에 빠져
있었다.
가난한 여자들은, 말라빠진 싸늘한 젖통을 늘어뜨리고
손가락을 까불거리며 깜부기불을 불러일으킨다.
이때가 바로 추위와 인색 틈에서
산고에 든 여인의 아픔이 더해 가는 시간
들끓는 피로 인해 끊기는 흐느낌처럼
수탉의 울음이
멀리 안개낀 대기를 찢고
안개의 바다는 높은 건물들을 감싸고
자선병원 저 안쪽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은
고로지 않은 딸꾹질로 마지막
숨을 내뱉고 있었다.
방탕한 녀석들은 밤일에 지쳐 늘어져,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불그스레하고 혹은 초록의 옷을 입은 새벽은 부들부들 떨면서
인기척 없는 세느 강 위로 서서히 다가오고
어두운 파리, 이 부지런한
늙은이는
부시시 눈을 부비며, 제 연장을 손에 쥔다.
3부 술
[ 술의 넋 ]
어느날 저녁, 술의 넋이 병 속에서 노래하기를
인간 ! 오, 친애하는 폐적자여,
나 그대에게
내 유리 감옥과 주홍빛 밀초
아래서
빛과 우애로 가득찬 노래를 들려주리라.
나는 아노라.
내 생명을 낳고 내게 혼을 주기 위해선
불타오르는 언덕 위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과 찌는 듯한 뙤약볕이
필요한가를
한데 어찌 내가 그 은혜를 잊고서 악랄할 수 있으랴,
일에 지친 사람의 목구멍에 떨어질 때는
무한한 기쁨을 나는 느끼고
그의 따뜻한 가슴은 싸늘한 내 지하실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아늑한 무덤이기에,
그대는 듣는가, 울려 퍼지는 주일 노래 후렴을.
팔딱거리는 내 가슴속에서 재잘대는 희망을?
식탁 위 팔꿈치 괴고 소매 걷어
올리며
그대는 나를 찬양하리라, 만족해 하리라.
기뻐하는 그대 아내의 두 눈을 나는 빛나게 하리라.
그대의 아들에겐 힘과 혈색을 되돌려주고
이 연약한 인생의 경기자를
위하여
투사의 근육을 굳혀 줄 기름이 되리라.
영원한 '씨를 뿌리는 자'가 던진 귀한 낱알
식물성 성스런 양식인 나는
그대 속에 떨어지리라.
우리의 사랑이 시를
낳아
귀한 꽃처럼 하나님 향해 피어 오르도록!
[ 넝마주이들의 술 ]
바람에 불꽃 나풀대고 유리문들 부딪치는
가로등 빨간 불빛 아래서
괴어 오르는 누룩처럼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진창의 미로, 옛
교외 한복판에서
내가 보는 것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비틀거리며
시인처럼 담벼락에 부딪치며 걸어오는 넝마주이.
비밀 경찰 따위는 제 부하인 양
개의치 않고
영광스런 계획품은 제 속을 온통 털어 놓는다.
선서를 하고, 숭고한 법조문을 공포하여
약한 자의 기를 꺽고, 희생자를 일으킨다.
왕좌 위에 드리운 포장 같은 창공
아래서
제 자신의 찬란한 덕행에 도취한다.
그렇다, 고달픈 살림에 들볶인 이 사람들,
일에 지치고 나이에 시달리고
거대한 도시 파리의 너저분한 구토물
산더미 같은
쓰레기 아래 맥이 빠지고 구부러져
술통 냄새 풍기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날의 싸움에 머리는 새고
콧수염이 낡은 깃발처럼 축 처진 패거리를 데리고
깃발과
꽃들, 그리고 개선문들이
그들 앞에 우뚝 솟는다. 엄숙한 마술이여!
그리고 나팔과 태양, 함성과 북소리로 요란하고 찬란한 축제에서
사랑에 취한 민중에게
그들을 가져다 준다. 영광을!
이처럼 술은 덧없는 인생을 가로질러
황금의 강, 눈부신 팍톨강이 되어 흐른다.
인간의 목을 통해 술은 제 공훈을
노래하고
여러 가지 선물로 진정한 임금처럼 군림한다.
말없이 죽어가는 저주받은 모든 늙은이들의
원한을 풀어 주고 무위를 어루만져 주려고
하나님은 누이는 마음으로 잠을
만드셨고
인간은 이에 술을 덧붙였다. 태양의 거룩한 아들을!
* 팍톨강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으로, 만물을 금으로 만드는 마력을 가진 임금 Midas가 멱을 감은 뒤로 모래가 온통 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 살인자의 술 ]
내 마누라가 죽어서, 나는 자유로와졌다!
그러니 취해 떨어지게 술을 마셔도 돼.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오며는
그녀의 고함소리
내 가슴 찢었지.
임금님 못지 않게 난 행복해.
대기는 맑고, 하늘은 더 높고......
내가 마누라에게 반했을 때도
이 같은
여름이었지!
나를 미치게 하는 이 끔찍한 갈증
채워 주기 위해선 필요하겠지.
그녀의 무덤 채울 만큼의 술이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인데
마누라를 우물 깊숙이 던져 버리고
그 위에 우물가의 돌맹이를
모조리 밀어 넣기까지 했었지.
되도록 잊어버리고 있는
일!
아무것도 우리 사이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사랑의 맹세를 내세우고
사랑에 도취했던 행복한 시절처럼
우리 다시
재회하자고.
어느날 저녁, 나는 그녀에게 사정하여
으슥한 거리로 나오라고 약속했었지.
그녀가 거기 나왔지 뭐야! 미친 년 같으니!
하긴
우리 모두가 다소는 미쳤지만!
그녀는 아직도 어여뻤었어.
비록 몹시 지쳐 있었지만,
그래서 나는 무척 마누라를 사랑했었지!
그래선 난
말했지,
살림의 때를 좀 씻어 버려.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천치 같은 주정뱅이 중 누군가가
넋 잃었던 밤 사이에 생각했을까,
술로 수의를
만들자고?
쇠로 만든 기계처럼
꼼짝달싹도 않는 치사한 주정뱅이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한번도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다.
진정한 사랑에는 검은 마력과
지옥 같은 경악의 행렬
독약병, 눈물, 그리고 쇠사슬과
뼈다귀가 내는 소리가 있다!
이제 나는 자유로운 외톨이!
이 저녁 죽도록 취하여
두려움도 후회도 모르는 체
땅바닥에 쓰러지듯 드러누워서
개새끼처럼 잠들어 버리리라!
돌멩이와 진흙 가득히 실은
무거운 바퀴가 끄는 짐수레가
미쳐 날뛰는 짐마차가
죄많은 내 머리 박살을 내거나
내 몸뚱이를 두 동강이 낼 수 있겠지.
악마이건 영성체대이건
나 또한 신처럼 까짓것 관심
없도다!
[ 고독한 자의 술 ]
물결 같은 달님이 제 나른한 아름다움을
멱감기고 싶을 때, 전율하는 호수 위로
살며시 내려보내는 하얀 달빛처럼
우리에게
던져지는 매혹적인 여인의 야릇한 눈초리도
노름꾼 움켜쥔 마지막 돈주머니도
야윈 아들린의 방종한 입맞춤도
아련히 들려오는 인간 고뇌의 외침과도 같은
무기력하고 달콤한
음악 소리도
이 모두가 쓸데없구나. 오, 그윽한 술병이여!
경건한 시인의 갈증이 가슴속에 파고드는
네 볼록한 배가 간직한 진정제
너는
시인에게 부어 준다, 희망과 젊음과 생명을.
---오만, 온갖 거지 근성의 이 보물은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어 신을 닮게
하누나!
* 아들린 : 바이런의 '동 쥐앙'에 나오는 여류 시인.
[ 연인들의 술 ]
오늘은 세상이 찬란도 하다!
재갈도, 박차도, 고삐도 없이
말타듯 술을 타고 떠나자꾸나
거룩한 꿈나라 하늘을
향하여!
열병같이 지독한 환각으로
괴로워하는 두 천사처럼
수정처럼 맑고 푸른 아침에
아득한 신기루를 따라 가자꾸나!
분별 있는 회오리바람의
날개를 타고 두둥실 흔들거리며
너와 나 똑같은 환희 속에서
누이여! 나란히 헤엄치면서
한시도 쉬지 말고 날아가자꾸나.
내 몽상의 천국을 향하여!
4부 악의 꽃
[ 파괴 ]
언제나 내 곁에는 '악마'가 우글거려
만져지지 않는 공기처럼 내 주위를 감돈다.
내가 놈을 삼키면, 내 허파는 타는
듯하고
영원한 죄악의 욕망으로 꽉 차는 듯하다.
때때로 놈은 내가 예술을 몹시 사랑하는 줄 알고
둘도 없는 매혹적인 여인으로 둔갑하여
위선적인 그럴 듯한 구실을 내세워
내
입술을 더러운 묘약에 맛들이게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권태'의 심오한 허허 벌판 한가운데로
지쳐서 헐떡이는 나를 이끌고 가서
얼떨떨한 내 눈 속에 던져 넣는다.
때묵은 옷가지와 벌려진 상처
그리고 '파괴'의 피투성이 도구를!
[ 순교받은 여인 ]
- 이름 모를 어는 대가의 스케치
향수병, 금박 박힌 천, 호사스런 가구들
대리석상과 그림들
풍성히 주름잡혀 끌리는 향그러운 의상들이
흩어져 있는
가운데
온실 안처럼 탁하며 불길한 분위기 감돌고
시들어 가는 꽃다발이
유리관 속에서 마지막 제 탄식 내뿜는
미지근한 방안에
머리 없는 송장 하나, 생생한 붉은 피를
강물처럼 흥건하게
젖은 베개 위로 쏟아내면 베갯닛은 목마른 초원처럼
그 피를 빨아
먹는다.
어둠에서 태어나 우리 눈을 붙들어 매는
파리한 환영처럼
그 머리, 한다발의 검은 머리채에
진귀한 보석을 달고
침대 옆 탁자 위에, 미나리아재비처럼 쉬고 있고
황혼처럼 뿌옇고 막연한 시선이 허망하게
뒤집힌 눈에서 새어 나온다.
침대 위에는 스스럼없이 벗어 버린 알몸
자연이 선사한
은밀한 광채와 숙명적인 아름다움을
온통 드러내 펼쳐 보인다.
금빛으로 가를 두른 장미빛 긴 양말
추억인 양 종아리에 걸려 있고,
양말 대님 타오르는 은밀한 눈동자처럼
금강석 시선을
던진다.
몸매며 시선이며 선정적이고
고독에 잠긴 나른한 큰 초상화와
이 야릇한 모습은
음흉한 애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죄많은 기쁨과 극성스런 입맞춤 가득한
괴상한 축제를
악의 천사 벌떼지어 휘장의 주름 속을
즐겁게 헤엄쳐 갔을 그
축제를
하지만 알맞은 대조의 윤곽 드러낸 그 어깨의
맵시 있게 야윈 모습과
뾰족한 듯한 둔부와 배암처럼 팔팔한
허리를 보면
그녀는 아직 꽤 젊었구나! 산산히 찢어진 영혼과 권태에 시달린
그녀의 관능은
타락하여 방황하는 굶주린 색골들에게
살며시
열어주었는가?
살아서 너를 그토록 사랑했겄만 그 갈증 풀어 주지 못한 한 많은 사나이가
힘없이 응해 주는 네 육체 위에 제 욕망
한없이
채웠는가?
대답해 보라, 추잡한 송장이여! 그가 네 굳어 버린 머리채를 움켜 쥐고
열 오른 팔로 너를 끌어당겨
네 차가운 이빨 위에 마지막
고별의 키스라도 했던가?
말해봐, 끔찍스런 대가리여,
---비웃는 세상과 멀리 치사한 무리들과
멀리 호기심 많은 관리들과
멀리 평안히 고히 잠자라,
네 신비로운 무덤 속에서
괴상한 계집이여.
네 남편은 세상을 돌아다녀도, 네 불멸의 형상은
잘 때도 그 곁을 지켜 주니
그도 아마 너처럼 죽도록 변함없이 너에게
충실하리라.
[ 천벌받은 여인들 ]
명상하는 가축처럼 모래 위에 드러누워
그 여자들은 저 먼 수평선에 눈을 돌린다.
발은 서로 찾고 마주잡은 손에는
감미로운
우울과 씁쓸한 전율이 있다.
어떤 여자는, 장황한 고백에 마음이 끌려
시냇물이 조잘대는 수풀 속 깊이 들어가
겁많은 어린 시절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어린 관목의 초록빛 나무에 새겨 놓는다.
또 어떤 여자는
수녀들처럼, 성 앙트완느가
그를 유혹하던 벌거숭이 자줏빛 젖통이
용암처럼 솟아났다는 허깨비 가득한 바위를
가로질러
유유히 엄숙하게 걸어가고 있다.
흘러내리는 송진의 희미한 불빛에
낡은 이교도적 동굴의 말없는 구멍 속에서
열정적인 울부짖음으로 그대의 구원을 호소하는 여자도
있다.
오, 바커스, 옛날의 회한을 잠재워 주는 이여!
또 어떤 여자들은, 즐겨 넓은 목도리를 걸치고
길다란 그 옷자락 밑에 채찍을 감추고 다닌다.
호젓한 밤, 으슥한
숲속에서
고통의 눈물과 쾌락의 거품을 섞는다.
오, 처녀들, 악마들, 오, 괴물들, 순교자들이여.
현실을 무시하는 위대한 영들이여,
무한을 찾는 여인들이여, 광신자들과
색마들이여,
때론 무섭게 고함치고, 때론 눈물짓는 그대들.
지옥까지도 내 영혼 쫓아 내려간 그대들이여
불쌍한 누이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동정하는 만큼 사랑한다.
그건 그대들의 생기 가신
번민, 채울 수 없는 갈증
그대들 가슴에 들어찬 무한한 사랑의 항아리 때문이지!
[ 사이좋은 자매 ]
'방탕'과 '죽음'은 사랑스런 두 자매
입맞춤 아끼지 않고 건강미 넘치는
언제나 처녀인 그녀들의 옆구리는 누더기를
둘렀고
영원한 노동에도 잉태하지 않는다.
가정의 원수, 지옥의 귀염둥이
부자와는 담을 싼 신하, 불길한 시인에게
무덤과 창가(娼家) 그들 소사나무 아래서
한번도
후회가 찾아온 적 없었던 침대를 가르킨다.
그리고 모독으로 가득찬 관과 규방은
사이좋은 자매처럼, 번갈아 우리에게 안겨 준다.
끔직한 쾌락과 소름끼치는 안일을
언제 날 묻을 텐가, 더러운 팔뚝 가진 '방탕'이여?
또, 너, 매력의 적수, 오, '죽음'이여, 언제 와서
그의 흉측한
도금양에 네 검은 실편백을 접붙이려니?
* 도금양은 로마 사람들에 의하면 비너스에 바쳐진, 즉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요, 검은 실편백은 죽음을 상징.
[ 피의 샘 ]
이따금 나는 느낀다. 콸콸 내 피가 흘러내림을
장단 맞춰 흐느끼는 샘물과도 같이
긴 속삭임으로 피 흐르는 소리 잘도
들리나,
아무리 더듬어 봐도 상처는 찾을 수 없다.
결투장에서처럼, 도시를 가로질러
내 피는 흘러간다, 포석을 작은 섬으로 만들고
온갖 창조물의 갈증을 풀어 주고
도처의
여기저기 자연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때때로, 나는 취해 오는 술에 나를 파고드는 공포를
하루라도 잠재워 달라고 애원했지만
술은 내 눈과 귀를 더욱 또렷하게 해줄
뿐.
사랑 속에 망각의 잠을 찾기도 하였으나
사랑은 나에겐 몰인정한 계집들에게
빨리기 위해 만들어진 바늘 방석일 뿐!
[ 우의 ]
그것은 술잔 속에 제 머리칼을 적시게 둔
풍성한 목덜미의 아름다운 여인이다.
애정의 손톱 자국도, 화류계의 독소도
모두
화강암 살결에선 미끄러지고 무너진다.
그녀의 죽음을 비웃고 방탕을 코웃음친다.
언제나 할퀴고 베어 넘기는 손이나
제
파괴적 놀이에서, 그녀의 꼿꼿한 몸에서 풍기는
야성적인 위엄에 존경을 바친 그 괴물들,
그녀는 여신처럼 걷고 회교국 왕비처럼 쉬고
있다.
쾌락에 있어서는 회교도의 신앙을 갖고
활짝 벌린 두 팔 안에 젖통을 가득 안고서
인간족을 눈으로 부른다.
비록 석녀이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처녀
그녀는 믿고, 그녀는 알고 있다.
육체의 아름다움은 신이 주신
선물로
그것은 온갖 파렴치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그녀는 '지옥'도 '연옥'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두운 '밤'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 오면
'죽음'의 모습을 바라보리라.
갓난애를 바라보듯---증오도 후회도 없이.
[ 베아트리체 ]
검게 타서, 풀도 없는 재투성이 땅속에서
정처없이 헤매다.
어느날 자연을 향해 분통을 터뜨리며
내 생각의 칼날을 내 가슴
위에서 천천히 갈고 있을 때
나는 보았다, 대낮인데도 내 머리 위에
폭풍우 안은 불길한 먹구름이
잔인하고 호기심 많은 난쟁이를
닮은
한무리 음탕한 악마들을 싣고 오는 것을.
냉담하게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더니
길 가던 행인들이 미치광이 구경하듯
사뭇
눈짓과 몸짓을 주고 받으며
서로들 킬킬대고 소곤대는 소리를 들었다.
---저 만화 서서히 구경하자구,
저 꼴 좀 보지, 햄릿 같잖은가.
흐릿한 눈빛에,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에
보기에도 몹시
가엾지 않은가, 저 호인,
저 거지, 저 놀고 먹는 어릿광대, 저 괴짜,
그 치는 제 구실을 교묘하게 해내는 줄 알고
제 고통을
담은 노래에 관심을 끌려 들고
독수리, 귀뚜라미, 시냇물과 꽃들,
그 낡아빠진 술책의 장본인인 우리들에게까지도
울부짖는 소리로
제 공공연한 장광설을 늘어놓으려 든다.
(나의 자존심도 산처럼 높아 구름과 악마들을 초월하므로.)
나는 단순히 내 지고의 머리를 돌릴 수 있었으리라.
만일 내가 그 음탕한 악마의 무리 가운데
---태양마저 비틀거리게 한 죄악
앞에---
세상에도 기이한 시선을 가진 내 마음의 여왕이
그 자들과 더불어 내 어두운 비탄을 비웃고
이따금 그들에게 치사스런
애무를 쏟는 것을 보지만 않았더라면.
[ 시테르 섬으로의 여행 ]
내 마음, 한 마리 새처럼, 즐거이 날아
밧줄 둘레를 자유로이 돌고 있었다.
배는 구름 없는 하늘 아래서 달리고
있었다,
마치 찬란한 햇빛에 취한 천사처럼.
저 어둡고 쓸쓸한 섬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건 시테르 섬, 노래로도 유명한 고장
노총각들 누구나 꿈꾸는 진부한
'황금의 나라'
그런데 보시오, 이제는 가난한 땅이 아니오.
달콤한 비밀과 마음의 향연의 섬이여!
고대 비너스의 희한한 유령이
향료처럼 너의 바다 위에 감돌고
사랑과 시름으로 정신을
채운다.
초록빛 도금양과, 활짝 핀 꽃들로 가득하고
온 백성들로부터 영원 무궁 숭배받던 아름다운 섬이여,
거기엔 찬양으로 타오르는
가슴들의 한숨이
장미원의 향기처럼, 아니 산비둘기의
영원한 울부짖음처럼 울려 퍼지누나!
---하나 시테르는 이제 더없이 메마른 땅
날카로운 고함 소리에 흔들린 자갈투성이의
황무지,
하지만 나는 얼른 보았다. 이상야릇한 것을!
꽃을 사랑하는 젊은 여승이
남모를 열정에 몸이 닳아서
스쳐 지나가는 미풍에 옷자락 펄럭이며 찾아간 곳은
숲 그늘에 감싸인
신전은 아니었다.
우리의 하얀 돛이 새들을 놀래 준 만큼
가까이 바닷가를 스쳐 갈 때 우리가 본 것,
그것은 가지가 세 개 달린
교수대
삼나무처럼, 시커멓게 하늘에 우뚝 솟아 있었다.
사나운 새들 먹이 위에 올라 앉아서
이미 썩은, 목매어 죽은 자를 미친 듯이 부수고
피투성이 부패물 구석구석에
저마다
더러운 부리를 연장인 양 처넣고 있었다.
눈은 두 개의 구멍이 되고, 파먹힌 배때기에서
묵직한 창자들이 제 허벅지까지 흘러내리고
끔찍스런 진미로 목구멍까지 채운, 그
망나니들은
부리로 계속 쪼아 완전히 그를 거세해 버렸다.
발 아래서는, 새들을 시샘하는 네 발 짐승 떼가
주둥이 치켜들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한가운데는 제일 큰 짐승 한
마리가
제 몸종 거느린 집행관처럼 건들거리고 있었다.
시테르의 주민이여, 그처럼 아름다운 하늘의 아이여,
말없이 그대는 그같은 모욕 견뎌내고 있었다.
그대에게 묘지마저 금한
죄악과
치사스런 의식을 속죄하느라고
우스꽝스런 교형자여, 그대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
떠돌아다니는 그대의 사지를 보며
나는 느꼈노라, 옛날의 쓰라린 고통이 긴
강물이 되어
구역질처럼 내 이빨을 향해 올라옴을.
그처럼 정다운 추억 지닌 가엾은 악마, 그대 앞에서
나는 느꼈다, 쪼아대는 까마귀 떼와 검은 표범 떼들의
모든 부리와 모든
턱주가리를
그 치들은 그 옛날 내 살 짓씹기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 사랑의 신과 해골 ]
- 유행에 뒤진 장말(章末) 컷
'사랑의 신'이 '인류'의 두개골 위에
앉아 있다.
그 옥좌 위에서 그 불결한 녀석
건방지게 웃어대며
비누 방울 즐거웁게 불어서
공중 높이 올려 보내니
다른 세상이라도 만나려는 듯이 솟아오른다.
구중천 깊숙이.
반짝반짝 빛나는 가냘픈 비누방울
훨훨 날다가
툭 터져 토한다, 제 약한 마음을
황금의 꿈과도 같이
나는 듣는다, 방울 하나하나에 애원하며
부르짖는 두개골 소리를
---이 야박하고 심술궂은 장난
언제나 끝나려오?
네 잔인한 입이 공중에 뿌리는 것은
무모한 살인자여,
그건 바로 내 피와 내 살,
그리고 내 머릿골인걸!
5부 반항
[ 성 베드로의 부인(否認) ]
제 사랑하는 수 천사를 향해 날마다 올라오는
그 저주의 물결을 대관절 하나님은 어찌하실까?
고기와 술로 포식한
폭군처럼
우리의 끔찍한 저주 음악처럼 들으시며 그는 잠드셨다.
순교자와 사형수들의 목메어 우는 소리는
아마도 그를 취하게 하는 교향곡인가,
그들의 쾌락을 위해 그토록 비싼 피를
흘렸는데도
하늘은 아직도 그것으로 반복하지 않으니!
---아! 예수여, 그대는 '감람나무 동산'을 기억하라!
멋모르는 살인자들이 그대의 몸에 못박던
그 망치 소리 들으면서 하늘에서
웃고 있던 자에게
당신은 순진하게도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악당 같은 위병과 요리사들이
거룩한 그대의 몸에 침 뱉는 것을 보고
무한한 인간성 깃든 그대 머리 속에
가시관이 박히는
것을 그대가 느꼈을 때에
산산이 찢겨진 그대 육신의 그 끔찍한 무게,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핏기 가셔 가는 그대의 이마에서 피와 땀이
흘러내리고
만인 앞에 그대가 과녁처럼 놓여졌을 때
그대는 꿈꾸고 있었던가, 그 아름답던 찬란한 날들을.
영원한 약속을 하시러 오시던 그날,
순한 암나귀 타고, 꽃과
나뭇가지로
온통 덮인 길을 밟고 오시던 그날
희망과 용기로 가슴은 잔뜩 부풀어
모든 야비한 그 장사꾼들을 힘껏 몰아치던 날
드디어
그대 주가 되시던 그날을?
회한이 그대 옆구리에 창보다 더 깊숙이 파고들이 않았던가?
---물론, 나로 말하자면 나는 떠나가리라.
행동이 꿈의 누이가 아닌 세상에 만족하면서
칼을 휘둘러 칼로 말할 수
있었으면!
성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였지!
......잘한 일이야!
[ 아벨과 카인 ]
1
아벨족이여, 자고 마시고 먹어라.
하나님은 만족하여 네게 미소짓는다.
카인족이여, 진창 속을
기어다니다 비참하게 죽어라.
아벨족이여, 너의 제물이
수 천사의 코를 기쁘게 하는구나!
카인족이여, 너의 형벌은
결코 끝이 없으려나?
아벨족이여, 보라, 네가 뿌린 씨와
가축이 풍성해 가는 것을.
카인족이여, 네 창자는
늙은 개처럼 배고픔을 호소한다.
아벨족이여, 네가 가장인 가정에서
네 배를 따뜻이 데워라.
카인족이여, 네 동굴 속에서
추위로 떨어라, 가련한 이리여.
아벨족이여, 사랑하고 우글거려라!
너의 황금 또한 새끼를 친다.
카인족이여, 가슴은 불타지만
그 큰 욕망에 조심하여라.
아벨족이여, 숲속의 벌레들처럼!
번식하며 새싹을 뜯어 먹는구나!
카인족이여, 네 가족을 이끌고
길을 헤매다 궁지에 빠져라.
2
아! 아벨족이여, 너의 송장으로
김나는 땅을 기름지게 하여라!
카인족이여, 네 수고가
흡족히 끝나긴 아직 멀었다.
아벨족이여, 너의 수치 여기에
쇠창이 엽창에 졌도다!
카인족이여, 하늘에 올라가
땅위에 던져라, 하나님을!
[ 사탄의 연도(連禱) ]
오, 그대, 천사들 중 가장 유식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대
운명에 배신당하고 찬양을 빼앗긴 신,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오, 귀양살이 왕자여,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패배당하고도, 항상 더 굳세게 일어나느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모든 걸 아시는 그대, 지하의 것들을 다스리는 대왕,
인간의 고민을 정통으로 고쳐 주는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문둥이들에게도, 저주받은 천민들에게도
사랑으로 천국의 맛을 알게 하시는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대의 강한 옛 연인, 죽음으로
희망을 탄생케 하는 그대---매혹적인 광녀여!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교수대 둘러싼 한 무리를 매도하는
차분하고 거만한 눈길을 죄수에게 던지는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탐스런 땅 어느 구석에 시샘 많은 신이
보석들을 감추어 두었는가 알고 있는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수많은 보석들이 파묻혀 잠자는
깊숙한 보고(寶庫)를 그 밝은 눈으로 알아내는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고층 건물 가장자리 헤매는 몽유병자에게
그 큰 손으로 절벽을 가려 주는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미처 못 피해 말굽 아래 짓밟힌 주정뱅이의
늙은 뼈를 용하게도 유연하게 만드는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신음하는 연약한 인간 위로하려고
초석과 유황의 배합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매정하고 비천한 거부의 이마에
그대의 낙인 찍어 준 그대, 오, 교묘한 공범자,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아가씨들 눈속에 마음속에
상처의 예배와 누더기의 사랑을 넣어 준 그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망명자의 지팡이, 발명가의 등불
교형자(絞刑者)와 음모자의 고해 신부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하나님 아버지가 몹시 화가 나셔서
지상낙원에서 쫓아낸 자들의 양부(養父),
오, 사탄, 내 오랜 비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기도
사탄, 그대에게 영광과 찬양 있으라.
그대가 다스리는 '하늘' 높은 곳에서나
패배하여 소리없이 그대 꿈에 잠기는 '지옥' 깊은
곳에서나!
언젠가 내 영혼 '지식의 나무' 아래, 그대 곁에서
쉬게 하여 주소서.
그대의 이마 위에
새로운 신전처럼 그
가지들이 우거질 시각에!
6부 죽음
[ 연인들의 죽음 ]
우리는 향유하리, 가벼운 향기 가득찬 침대,
무덤처럼 깊숙한 긴 안락의자들
선반 위에 놓인 야릇한 꽃들
더 한층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우리들 위해 피었으리.
마지막 열을 다투어 쏟으며
우리의 두 가슴, 두 개의 큰 횃불 되어
우리의 두 마음, 그 쌍둥이 거울 속에
그 두 겹의
불빛을 비춰 주리라.
장미빛과 신비스런 푸른 빛 도는 저녁
우리는 서로 다시 없는 불꽃을 나누리,
고별을 아쉬워하는, 애절한 긴
흐느낌처럼!
뒤이어 한 천사,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와 즐거워하며
정성껏 흐린 거울과 죽은 불꽃을 되살려 내리라.
[ 가난뱅이의 죽음 ]
슬프도다! 우리를 위로하고 살게 해주는 건 '죽음'
그것은 생의 목적, 그것은 유일한 희망
묘약처럼 우리 몸에 들어가 우리를
취하게 하여
저녁까지 살아갈 마음 우리에게 준다.
폭풍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서리가 와도
그것은 어두운 우리의 지평선에서 깜박거리는 불빛
그것은 저서에도 나와 있는 이름난
주막
사람들은 거기서 먹고, 자고 쉴 수 있으리라.
그것은 자력 가진 손가락 속에
잠과 황홀한 꿈의 선물 움켜진 '천사',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것은 제신(諸神)의 영광이요, 신비로운 곳간,
그것은 가난뱅이의 지갑이요, 해묵은 고향
미지의 '하늘 나라' 향해서 열려진
주랑!
[ 예술가의 죽음 ]
몇 번이나 내 방울 흔들며 네 숙인 이마에
입을 맞추어야 하나, 시름겨운 풍자화여?
신비로운 본질! 과녁에 맞추어 꽂기
위해
오, 내 화살통이여, 얼마만큼의 투창을 잃어야 하나?
우리는 교묘한 음모에 우리 영혼 상케 하고
숱한 뼈대 만들어서 헐으리라.
그 가혹한 욕망 우리를 흐느끼게 하는
저 위대한
'창조물'을 바라보기 전에!
그들의 '우상'을 영영 알지 못한 사람도 있고
가슴과 이마를 치며 괴로워하는
모욕의 낙인 찍힌, 저 저주받은 조각가들.
그들의 희망은 오직 하나, 기이하고 어두운 신전이여!
그것은 죽음이, 새로운 태양처럼 떠올라
그들 두뇌의 꽃들을 활짝 피우게
하는 것!
[ 하루의 종말 ]
어슴푸레 햇빛 아래
삶이, 뻔뻔스레 떠들며
이유 없이 뛰고, 춤추고, 몸을 비튼다.
그리하여 이윽고 지평선에서
쾌락의 밤 솟아 올라
허기마저도 다 가라앉히고
수치마저도 다 지워 버릴 때
시인은 중얼거린다.
"마침내! 내 정신은, 내 등뼈처럼
열렬히 휴식을 갈구한다.
서글픈 공상 가슴 가득히
나는 등을 대고 드러누워
네 적막 속에 잠기련다.
오, 시원한 어둠이여!"
[ 어느 호기심 많은 자의 꿈 - F.N.(펠릭스 나다르)에게 ]
그대도 나처럼 향기로운 고통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대 보고 '오! 괴상한 사내!' 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들뜬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감지할 수 없는 아픔, 공포 어린 욕망,
주체할 수 없는 불안과 강렬한 희망이었다.
숙명적인 모래 시계 자꾸 비어 갈수록
내 괴로움 더욱더 쓰라리고 감미로웠다.
내
마음은 온전히 친근한 세상에서 빠져 나왔다.
구경거리 찾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사람들이
장애물을 싫어하듯 막을 저주하는 나......
이윽고 차가운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미 죽어 있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무서운 새벽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는데도.
---'뭐라구' 그래 요것뿐이라구?
꿈의 막은 걷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 펠릭스 나다르(1820∼1910) : 보들레르의 친우, 풍자화가, 사진술 초기의 가장 우수한 초상 사진가.
[ 여행 - 막심 뒤캉에게 ]
1
지도와 판화를 사랑하는 어린이에게는
우주는 왕성한 식욕의 대상
아! 등잔불에 비친 세계는 얼마나 광대한가!
추억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얼마나 작은가!
어느날 아침 우리는 떠난다, 열정에 찬 머리!
원한과 쓰라린 욕망으로 서글픈 마음을 하고
그리고 우리는 간다, 선율적인 물결을
따라
끝없는 바다 위에 우리는 무한한 마음 흔들어 주며
어떤 사람은 소란스런 조수 빠져나감을 기뻐하고
어떤 사람은 끔찍스런 요람에서, 또 어떤 사람은
여자의 눈에 빠진 점성가들은,
위험한 향기 품은
폭군 같은 시세르에서 달아남을 즐거워한다.
짐승으로 변신되지 않으려고 그들은 도취한다.
공간과 햇빛, 그리고 타오르는 하늘에
살을 에이는 얼음과 구리빛으로 빛나는
햇빛은
입맞춤의 자국을 서서히 지워 간다.
그러나 참다운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가벼운 마음으로 풍선처럼
주어진 숙명에서 결코 빠져 나기지
못하면서
무작정 언제나 가자! 라고 말한다.
그들의 욕망은 구름의 형태를 하고
대포를 갈망하는 신병처럼 꿈꾼다.
인간 정신이 일찍이 그 이름 알지 못한
저 미지의
변덕장이, 무한한 쾌락을!
2
아뿔싸! 우리는 빙글빙글 도는 팽이와 퉁겨 오르는 공을
흉내내고 있구나, 잠들어 있을 때 조차도
호기심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굴리어 간다.
태양을 채찍질하는 잔인스런 천사처럼,
목표가 항상 바뀌는 얄궂은 운명
아무데도 없는가 하면, 어디에고 있을 수 있지!
인간은 절대로 지치지 않는 희망을
안고
휴식을 찾아 미친 녀석처럼 계속 달린다.
우리의 영혼은 이카리 섬 찾아가는 돛대 세 개 달린 배,
하나의 목소리가 갑판 위에 울린다. '눈을 떠라!'
미쳐 날뛰는 열렬한
목소리가 장루(檣樓)에서 외친다.
'사랑......영광......행복!' 지옥행이로군! 암초로구나!
망보는 사나이가 신호를 해주는 섬들은
모두 운명에 의해 약속된 '황금의 나라'
축제의 기를 쳐드는 '공상'이
아침 햇빛에
찾아낸 건 암초일 뿐.
오, 환상적인 나라를 사랑하는 가엾은 사나이여!
녀석을 사슬에 묶어 바다에 던져야 할까,
신기루가 심연을 깊게 만드는
저
주정뱅이 뱃사공, 아메리카 발견자를?
늙어 빠진 집시처럼, 발은 진창을 밟으면서
코를 공중에 쳐들고 찬란한 천국을 꿈꾼다.
마술에 걸린 그의 눈은 카푸아 도시를
발견하고
어디에서고 촛불이 빈민굴을 비춰 준다.
3
놀라운 여행자여! 바다처럼 깊숙한 그대들의 눈 속에서
얼마나 고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읽어내는가!
그대들의 풍요한 기억 담은
보석상자 우리에게 보여다오.
별과 대기로 만들어진 그 신기한 보석들을.
우리는 증기도 돛도 없이 여행하고파!
우리의 권태로운 감옥을 즐겁게 하기 위해
화포처럼 펼쳐진 우리의 정신 위에
수평선을
그림틀 삼아 그대들의 추억 펼쳐 놓았다오.
말해 주렴, 그대들의 본 것은 무엇인가!
4
우리는 보았네,
별과 물결과 모래밭을
숱한 뜻밖의 재난과 충격에 부딪치면서도
우리는 권태를 털어내지 못했다,
여기서처럼.
보랏빛 바다 위의 태양의 영광
석양 속에 잠든 도시의 영광
우리의 가슴속에 불안한 열정 불태워서
매혹적인 석양의 하늘 속에
우리를 잠기게 한다.
제 아무리 호사스런 도시도, 아무리 웅장한 경치도
구름이 무심히 만들어 내는 것들의
저 신비로운 매력엔 비길 수
없었고
언제나 욕망은 우리를 소심하게 하누나!
---향락은 욕망에 힘을 북돋워 준다.
욕망, 쾌락을 거름하여 자라는 늙은 나무여,
네 껍질은 살이 쪄 딱딱해져도
네
가지는 태양을 더욱 갈망하는구나!
너는 줄곧 켜지기만 할 테냐, 실편백보다
더 검질긴 큰 나무여! ---하나 우리는 정성들여
욕심 많은 그대들의 사진첩 위에 몇
장의 스케치를 모아두었다.
먼 나라의 것이라면, 무엇이고 아름답게 여기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코끼리 코를 가진 우상에 절을 하였고
찬란한 보석으로 장식한 옥좌에도 절을 하였다.
신화 속의 휘황찬란한
궁궐들은
그대들의 재벌에겐 파산의 꿈이 되고
눈을 황홀케 하는 의상들
이빨과 손톱 물들인 아낙네들
그리고 뱀이 애무하는 교묘한 요술쟁이가 되리.
5
그리고, 또 그리고는?
6
오, 유치한 인간들이여!
가장 중요한 일을 기억하고자
굳이 찾아다니지 않았건만, 우리는 도처에서 보았다.
숙명적인 사닥다리
위에서 아래까지
불멸의 죄악에 시달리고 있는 광경을.
아낙네는 비천한 노예, 교만하고 어리석어
심각하게 제 몸을 숭배하고, 혐오 없이 제 몸 사랑했고
사내는 탐욕스런 폭군, 방탕하고
지독하고 욕심이 많아
노예 중의 노예요, 하수도에 흐르는 구정물.
아마튜어 사형집행인, 흐느끼는 순교자
피로 양념치고 맛을 내는 잔치
독재자를 약올리는 권력의 독약
또한 휘두르는 채찍을
사랑하는 백성
우리의 종교와 비슷한 여러 가지 종교들
모두가 하늘로 기어오르고
성령은 깃털의 잠자리 속에서 딩구는 성미 까다로운
자처럼
수난과 고행 속에서 쾌락을 찾고
수다스런 인류는 제 재주에 취하여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어리석어
미칠 듯한 고뇌 속에서 하나님께 외친다.
"오, 나의
동류, 내 주여, 나는 그대를 저주하노라?"
'치매'를 몹시 사랑하는, 그래도 덜 어리석다는 자들은
'운명'에 의해 울안에 갇힌
무리들을 피하여
끝없는 아편 속에 피신하였도다!
---이것이 온 지구의 영원한 보고서니라.
7
쓸쓸한 예지, 이것이 여행에서 얻는 열매인가!
세상은 단조롭고 작아서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언제나 우리의 모습을 비춰
준다.
권태의 사막 속에 있는 소름끼치는 오아시스여!
떠나야 하나? 머물러야 하나? 머무를 수 있거들랑 머무르려무나.
떠나야 하거든 떠나라. 어떤 이는 달리고, 어떤 이는
웅크린다.
악착 같은 서글픈 원수, 시간을 속이기 위하여!
방황하는 유태인처럼, 또 사도들처럼.
아!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치사한 망투사를 벗어나려면
마차도 선박도, 아무것으로도 못 당하리.
그 중에는
제 요람 안에서 그를 죽일 수 있는 이도 있다.
드디어 그가 우리 등뼈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를 외칠 수 있으리라.
그 옛날 우리가 중국을 향해
떠나던 것처럼
눈은 바다를 응시하고 머리털은 바람에 날리며
우리는 '암흑'의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리리,
젊은 여행자처럼 한없이 즐거운 심정으로
들리는가, 매혹적인 저 구슬픈 목소리의
노래가!
"이리로 오라! 저 향기로운 '로터스'
그 열매를 먹고자 하는 그대들이여!
여기가 바로 그대의 마음 굶주려 찾는 기적의 열매 거두어 들이는 곳,
와서 취하여라, 영원히
끝이 없는
이 오후의 기묘한 감미로움에!"
귀에 익은 억양에 우리는 망령인가 여겨 본다,
저기 우리의 필라드들이 우리를 향해 팔을 뻗는다.
"그대 가슴 식히려 그대의
엘렉트라 곁으로 헤엄쳐 와요!"
이렇게 속삭인다, 옛날 우리가 그 무릎에 키스하던 여인이.
8
오, '죽음', 늙은 선장, 때는 왔도다! 닻을 올리자!
이 고장에 우리는 싫증이 났어, 오, '죽음'이여! 출범 준비를
하자!
비록 하늘과 바다가 먹물처럼 검다 해도
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의 마음은 광명에 차 있다!
네 독소 우리에게 부어서, 우리의 기운을 돋우어 주렴!
그토록 그 불길에 우리의 두뇌는 타올라
'지옥'이건 '천당'이건 무슨
상관 있으랴?
심연 깊숙이 '미지'의 밑바닥에 잠기고 싶다.
새로운 무엇을 찾아내기 위해.
7부 처벌 시편
[ 보석 ]
정다운 임은 발가숭이였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알아 주기에,
소리나는 보석밖에는 몸에 차고 있지 않았다.
그 호사로운 패물은,
모르의 계집종들이
즐거운 날에 보이는 저 호기로운 모습을 그녀에게 빚어주었다.
춤추며, 비웃는 듯 쟁그랑 소리 울릴 때,
쇠붙이와 돌로 된 그 눈부신 세계는
나를 황홀하게 만들고, 나는 미칠
듯이,
소리와 빛이 한데 어울린 그것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그녀는 드러누워서 사랑에 몸을 맡기고,
긴 의자 위에서 흐뭇한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바닷물이 절벽으로 솟아오르듯
그녀에게로 솟아오르는,
바다처럼 깊고 아늑한 내 사랑을 내려보면서.
길들인 호랑이처럼, 지긋이 나를 바라보면서,
아련히 꿈꾸는 듯, 그녀는 온갖 교태를 지어 보이고,
순진함과 음탕함이 한데
어울려,
그녀의 변모에 새로운 매력을 주고 있었다.
그 팔과 다리, 그리고 허벅지와 허리는,
기름처럼 매끄럽고, 백조처럼 물결쳐,
밝고 맑은 내 눈 앞에 아른거리고,
그 배와
젖퉁이, 나의 이 포도송이는,
악의 '천사' 보다도 더 아양스럽게 다가와,
내 넋이 잠겨 있는 휴식을 깨뜨리고,
고요히 홀로 앉아 있었던 수정
바위에서
내 넋을 일어서게 하였다.
마치 소년의 상반신에다 앙티오프의 허리를
붙여 놓은 새로운 소묘(素描)라도 보는 듯,
그토록 그 몸통은 골반을 불거지게
하였다.
그 황갈색 얼굴빛에, 화장도 희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남포불 속절없이 사위어 가고,
난로만이 희미하게 방을 비추어,
한숨쉬듯 불타오를 때마다,
그
호박(琥珀) 빛 살결을 피로 물들이곤 하였다!
* 앙티오프 : 테베의 왕 니크테우스의 딸. 자고 있는 동안에 사튜로스로 변모한 제우스에 의해 겁탈당한다. 이 장면을 그린
코레즈, 와토 등의 그림이 있다.
(모델은 애인이었던 잔느 듀발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망각의 강 ]
오너라, 내 가슴속에, 매정하고 귀먹은 사람아,
사랑하는 호랑이, 시름겨워 보이는 괴물아,
내 떨리는 손가락을 오래오래 잠그고
싶다.
네 무거운 갈기 우거진 속에.
네 향기 가득찬 속치마 속에
고민에 아픈 내 머리를 파묻고,
내 사라진 사랑의 그리운 냄새를
시들은 꽃처럼 들이마시고
싶다.
자고 싶어라! 살기보다 차라리 자고 싶어라!
죽음처럼 아늑한 잠 속에서
내 입맞춤 거침없이 쏟으리,
구리처럼 미끈한 그
고운 몸에다.
내 흐느낌을 가라앉혀 삼키는 데는
그윽한 네 잠자리를 당할 게 없다.
네 입술엔 거센 망각이 깃들이고,
네 입맞춤엔 망각의
강이 흐른다.
내 운명을, 이제부터는 지락(至樂)으로 여기고,
나는 좇으리, 운명론자와 같이,
나는 온순한 순교자, 무고한
수형자(受刑者),
타오르는 열광에 형벌은 가중되어도,
나는 빨리라, 원한을 달래기 위해,
그 네팽테스와 맛좋은 독인삼(毒人蔘)을,
일찍이 정이라곤 담아 본 적 없었던
그 뾰죽한
매력적인 젖꼭지 끝에.
* 네팽테스 : 시름을 잊게 하는 마술의 음료, 호머의 작품 중에 나온다.
(모델은 흑백 혼혈 여배우인 잔느 듀발에게 바쳐진 시.)
[ 어느 쾌활한 여인에게 ]
그대의 머리와 몸짓, 그리고 맵시는
아름다운 경치처럼 아름답구나.
맑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흐르듯
그대 얼굴엔
웃음이 뛰논다.
그대 옆을 스쳐 가는 슬픈 행인도,
그대의 팔과 어깨로부터
번개처럼 용솟음치는
그 건강에 눈이 부시다.
그대 의상을 장식하는
요란스런 빛깔은
꽃의 발레의 환영(幻影)을
시인의 마음 속에 던진다.
그 야단스런 옷들은
얼룩덜룩한 그대 마음의 상징인가.
나를 미치게 하는 쾌활한 여인이여,
나는 그대를 미워한다,
그대를 사랑하듯이 !
이따금 아름다운 정원을
하염 없이 거닐 때면,
태양이 빈정거리듯,
내 가슴 찢음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봄과 신록이
내 마음을 모욕하기에,
나는 한 송이 꽃에
'자연'의 건방짐을 벌해 주었다.
그와 같이, 나는 어느 밤,
쾌락의 시간이 울리면,
구슬 같은 그대 몸 곁에,
겁장이처럼 살금살금 기어가,
쾌활한 그대의 살을 벌해 주고파,
허락한 그대의 젖퉁이를 다쳐 주고파,
그대의 놀란 옆구리 깊이
큼직한 상처를 내어
주고파,
그리고, 아 어지러운 쾌감이여 !
한결 눈부시고 한결 아름다운
그 새로운 입술을 통해, 내 누이여,
그대에게 내
독(毒)을 부어 넣었으면 !
[ 레스보스 ]
라틴의 놀음과 희랍의 쾌락의 어미,
레스보스, 거기에 시름겨운 또는 즐거운 입맞춤은,
태양처럼 따가옵고, 수박처럼
시원하고,
빛나는 낮과 밤을 장식한다,
라틴의 놀음과 희랍의 쾌락의 어미.
레스보스, 거기에 입맞춤은 폭포 같은 것,
밑바닥 없는 심연 속에 겁 없이 뛰어들고,
때때로 흐느끼고 끙끙거리며
내닫는다.
광포하고 은은하게, 복잡하고 그윽하게,
레스보스, 거기에 입맞춤은 폭포 같은 것!
레스보스, 거기에 프리네들은 서로 그러당기고,
한숨마다 메아리가 되울려 오고,
파포스와 아울러 별들은 너를
그리니,
비너스인들 사포를 시새워 마땅하리라!
레스보스, 거기에 프리네들은 서로 그러당기고.
레스보스, 정열의 시름겨운 밤들이 깃들이는 땅,
눈퉁이 꺼진 아가씨들은, 오 결실 없는 쾌락이여!
제 몸에 반하여 거울을 들여다
보고,
과년찬 익은 열매를 어루만진다.
레스보스, 정열의 시름겨운 밤들이 깃들이는 땅.
늙은 플라톤이 준엄한 눈살을 찌푸린들 어떠냐!
그리운 왕국의 여왕, 사랑스럽고 고귀한 땅이여,
그 넘쳐 흐르는 입맞춤에서,
그리고 언제나 무궁무진한
그 세련된 몸짓에서 너는 너의 용서를 얻는다.
늙은 플라톤이 준엄한 눈살을 찌푸린들 어떠냐!
그 영원한 고뇌에서 너는 너의 용서를 얻는다,
저 다른 나라의 하늘 언저리, 머나먼 곳에,
아련히 떠오르는 빛나는 미소에
끌려,
갈망하는 가슴이 끊임없이 겪는 고뇌!
그 영원한 고뇌에서 너는 너의 용서를 얻는다!
어느 신이 감히 너의 심판을 하랴, 레스보스여,
그리고 노고 속에 파래진 네 이마를 벌하랴,
네 시내가 바다로 쏟아 넣은 눈물의
홍수를
그의 황금 저울 달아 보지 않았다며는?
어느 신이 감히 너의 심판을 하랴, 레스보스여?
옳고 그름의 법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
숭고한 마음을 가진 처녀들이여, 다도해의 영이여,
그대들의 종교는 다른 종교 못지 않게
존엄하고,
사랑은 '지옥'도 '천국'도 다 같이 비웃으리!
옳고 그름의 법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
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서 레스보스는 나를 골랐으니,
그 꽃핀 처녀들의 비밀을 노래하라고.
애달픈 눈물 어린 저 걷잡지 못할
웃음의
검은 신비에 나는 어려서부터 통하였도다.
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서 레스보스는 나를 골랐으니.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는 뢰카트의 꼭대기에서 망을 본다,
저 멀리 창공 아래 그 형체 가물거리는
상선(商船)과 어선, 또는
쾌속정을 밤낮 엿보는
날카롭고 어김 없는 눈을 가진 파수꾼처럼,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는 뢰카트의 꼭대기서 망을 본다,
바다가 너그럽고 어진지 어떤지 알기 위하여,
그리고 바위에 메아리치는 흐느낌 속에, 바다에 몸을 던진
사포의 숭배 받는 시체가
모든 것을 용서하는
레스보스에 어느날 저녁 떠오는지 어떤지,
바다가 너그럽고 어진지 어떤지 알기 위하여!
사내다운 사포, 사랑했던 시인,
침울하고 창백한 그 모습은 비너스보다 아름답고,
----여신(女神)의 푸른 눈도 고뇌로
그려진
그 검푸른 무리를 두른 검은 눈만 못하였다,
사내다운 사포, 사랑했던 시인!
세계 위에 우뚝 선 비너스보다 아름다고,
그 청초한 모습의 구슬과
금발머리 청춘의 광휘를
제 딸에 홀린 늙은 '바다'에
쏟으면서,
세계 위에 우뚝 선 비너스보다 아름답고!
----그 모독(冒瀆)의 날에 죽어 간 사포,
꾸며낸 예배와 의식(儀式)을 비웃으며,
그녀의 배교(背敎)를 벌한 오만한 짐승
같은 사내에게
마지막 밥이 되어 아름다운 몸을 바친
그 모독의 날에 죽어 간 그 여자.
그리하여 이 때부터 레스보스는 한탄하고,
온 세계가 그에 바치는 존경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바닷가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고뇌의 외침에 밤마다 도취한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레스보스는 한탄하고.
[ 천벌 받은 여인들 - 델피느와 이폴리트 ]
시름어린 램프의 희미한 불빛 아래,
향기 듬뿍이 배어든 폭신한 보료 위에서,
이폴리트는 꿈꾸고 있었다. 젊은 순결의
막을
걷어 올려준 힘찬 애무를.
그녀는 찾고 있었다, 폭풍에 흐려진 그 눈으로,
이미 멀어진 천진 난만의 하늘을,
아침에 지나온 푸른 지평선 쪽을
돌아다
보는 나그네처럼.
나른한 눈에 글썽거리는 애달픈 눈물,
기신 없이 멍청한 모습, 서글픈 쾌락,
헛된 무기처럼 내던진 맥풀린 두 팔,
모두가
그 가냘픈 아름다움을 한결 장식하고 있었다.
그 발 아래, 델피느, 기쁨에 넘쳐, 고요히 누워,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빨로 우선 자국을
내놓고는
먹이를 지켜보는 억센 짐승과 같이.
연약한 아름다움 앞에 무릎을 꿇은 힘찬 아름다움,
의젓하게 그녀는 그 승리의 술을
쾌락에 넘쳐 들이마시고, 그녀 쪽으로 몸을
뻗쳤다,
달콤한 감사라도 따려는 듯이.
핼쓱한 희생자의 눈 속에 그녀는 찾고 있었다,
쾌락이 노래하는 말 없는 찬가를,
그리고 기다란 한숨처럼 눈꺼풀에서
솟아오르는
그지 없는 그 숭고한 사의(謝意)를.
----"이봐, 이폴리트, 이걸 어떻게 생각해?
네 처음 핀 장미꽃의 거룩한 제물을
그 꽃 시들게 할 사나운 바람에
바쳐선
안 된다는 걸 이제 너는 알겠니?
내 입맞춤은, 저녁에 맑은 호수를 어루만지는
하루살이와 같이 가벼운데,
너를 사랑하는 사내의 입맞춤은 짐수레처럼
또는
날카로운 보습처럼 자국을 파고,
육중한 마소들의 굽과도 같이
사정 없이 네 위를 지나가리라------
오 이폴리트, 내 동생아, 자 얼굴을 돌려라,
너는
내 넋이자 심장, 내 전부자 절반,
푸른 하늘과 별로 가득찬 네 눈을 내게 돌려라!
오 거룩한 향유(香油), 그 매혹적인 눈길을 얻기 위하여
한결 은밀한 쾌락의
장막을 나는 걷어 올리고,
끝없는 꿈 속에 너를 잠재워 주마!"
그러자 이폴리트는 그 젊은 머리를 들고,
----"나는 은혜를 잊지도 않고, 후회도 않아,
델피느여, 하지만 나는 괴롭고
불안해,
마치 밤의 무서운 향연이나 끝난 것처럼.
나는 짓누르는 공포와, 여기저기 흩어진
유령의 검은 대열이 나에게 달려들어,
사방이 피투성이의 지평으로
가로막혀진
뒤뚱거리는 길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 같아.
그래 우리가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했단 말인가?
설명해 보아, 할 수 있거든, 내 고민과 공포를.
'내 천사여!'하고 언니가
나를 부르면 나는 무서워 떠는데도
내 입술은 저절로 언니한테로 가는 것 같아.
그렇게 날 바라보지 마, 아 그리운 사람!
내 영원히 사랑하는, 내가 고른 언니여,
비록 언니가 내 앞에 패인
함정이거나
내 천벌의 근원이라 할지라도 말이야!"
델피느는 그 비극적인 갈기를 설레설레 흔들며,
쇠 삼각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무녀와 같이,
숙명적인 눈, 강압적인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도대체 누가 사랑 앞에서 감히 지옥을 말한담?
부질없는 몽상가는 영원히 저주 받아라,
풀 수 없는 공연한 문제에 사로잡혀서,
제라사 먼저, 어리석게도, 사랑에 관한
일들에
품행을 운운하려는 그런 사람은!
그늘과 더위를, 밤과 낮을
신비로운 조화 속에 합치려는 그런 사람은,
사랑이라 일컫는 저 붉은 태양에서도
마비된 그 몸을
녹이지 못하리!
원한다면 찾아가 보라, 너와 결혼해 줄 어리석은 사내를.
그 잔인한 입맞춤에 달려가서 바쳐라, 처녀의 가슴을.
그런다면,
뉘우침과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하고,
너는 내게 가져 오리라, 네 낙인 찍힌 젖퉁이를------
이승에선 단 하나의 주인밖에 만족시킬 수 없는 법이야!"
그러나 소녀는 한없이 괴로움을 터뜨리면서,
느닷없이 외쳤다.
----"내 속에 떠억 벌어진 심연이
자꾸만 커져 가는 것 같아. 그 심연은 내 가슴!
화산처럼 타오르고, 허공처럼 깊어라!
이 신음하는 괴물을 무엇이라 만족시키고,
횃불을 손에 들고 피나도록 태우는
저
외메니드의 갈증을 무엇이라 풀어 주리!
우리의 닫힌 휘장이 우리를 세상에서 떼어놓고,
이 고달픈 휴식을 가져 오기를!
나는 언니의 아늑한 품속에서 죽어 없어져,
언니의 가슴 위에 무덤의 서늘함을 찾고 싶어요!"
----내려가라, 내려가, 한심스런 희생자들아,
영원한 지옥의 길을 내려가라!
온갖 죄악이,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닌 바람에
두들겨맞아,
폭풍소리 요란하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나락의 밑바닥에 가서 잠겨라.
미친 망령들이여, 너희들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거라.
너희들은 결코 그 격정을 만족시킬 수
없고,
너희들의 쾌락에선 천벌만이 태어나리니.
한 줄기의 신선한 햇살도 너희들의 굴을 비추지 않았고,
벽 틈으로 따가운 독기가 스며들어
등불처럼 너울너울 타오르고,
그
무서운 냄새는 너희들 몸에 배어든다.
아예 임신할 줄 모르는 너희들의 향락은
갈증만을 북돋고 살갗을 거칠게 하며,
휘몰아치는 그 정욕의 광풍은
낡은 깃발처럼
너희들 살을 퍼덕거리게 한다.
산 사람들과 멀리 떠나서 지옥에 떨어져 헤매는 계집들이여,
허허벌판을 이리처럼 달려라.
타락한 넋들이여, 너희들의 운명을 스스로
마련하여,
너희들 속에 간직한 무한에서 달아나거라!
[ 흡혈귀의 변모술 ]
그러자 여인은 딸기 같은 입술에서,
잉걸 위의 뱀처럼 몸을 비틀고
콜셋 쇠살 위에 젖퉁이로 이기면서,
사향 냄새
배어든 이런 말을 흘렸다,
---"내 입술은 축축하여, 잠자리 속에서
케케묵은 양심을 없애는 비결을 안다.
자랑스런 젖퉁이
위에 온갖 눈물을 말리고,
늙은이도 어린이 같은 웃음을 웃게 만든다.
아무런 가림 없는 내 발가숭이를 보는 이에겐,
나는
달이 되고, 해가 되고, 하늘과 별이 된다 !
쾌락에 관해서라면, 오 친애하는 학자여, 내가 박사라,
수줍고도 호탕하며 약하고도
실팍진 내가
내 무서운 품 안에 사나이를 질식시킬 때,
내 가슴을 깨물도록 내버려 둘 때,
감격에 실신하는 이 보료
위에서,
무력한 천사들은 지옥에 떨어지리, 이 몸 때문에 !"
그녀가 내 골수를 모두 빨아 먹은 뒤,
내가 사랑의 입맞춤을 돌려 주려고
기신 없이 그녀를 돌아다 보니, 내 눈에 보인 건
오직
옆구리가 진득진득한, 고름으로 가득찬 가죽 부대뿐 !
나는 섬뜩하여 두 눈을 감았다,
밝은 햇빛에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옆에는 피가 담겨 있어 보이던
그 풍만한 마네킨 대신,
해골 조각만 너절하게 흩어져,
겨울 밤 바람에
나부끼며,
쇠 막대 끝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나
간판 같은 소리를 지르며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