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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山恒一の政見放送 도쿄 도지사 공중파 선거방송 연설 (토야마 코이치)

Darkel 2007. 12. 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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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쿄 도지사 후보
무소속, 토야마 코우이치, 36세
반 관리교육 운동으로 시작하여 2년 투옥 후 현재에 이른 반체제 지식인.
그의 정견 발표를 들어보겠습니다.

유권자 제군(諸君), 내가 토야마 코우이치다.
제군, 이 나라는 최악이다.
정치개혁이나 뭔 개혁이나 나는 그딴 거에 일체 흥미 없다.
이것저것 개혁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이젠 그런 널럴한 단계가 아니다.
이런 나라는 이제 내다 버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나라는 쫄딱 망해버려라.
나에겐 건설적인 제안 따윈 하나도 없다.
지금은 다만 SCRAP & SCRAP, 모조리 때려부수는 거다.
제군, 나는 제군을 경멸하고 있다.
이 쓰잘떼기 없는 나라를, 그 시스템을 끌어가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제군이기 때문이다.
적확하게 말하면, 제군 중 다수파는 나의 적이다.
나는 제군 중 소수파에게 말을 걸고 있다.
소수파 제군, 지금이야말로 단결하여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다수파 놈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다.
우리 소수파가 점점 힘들어지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소수파 제군, 선거로 뭔가 바뀌리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애초 선거 따윈 다수파의 축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소수파에게 선거처럼 바보짓은 없다.
다수결로 정하면 다수파가 이기는 게 당연하잖은가.
자, 어떻게 할 건가.
그 이야기는 길어지니까, 게시판의 포스트를 봐다오.
포스터는 두 가지니까 하나라도 놓치지 말도록.
나는 이 나라의 소수파에 대한 학대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소수파 제군, 다수파에 대한 설득 따윈 할 수 없다.
다수파 놈들은 우리 소수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다수파 놈들이 지배하는 이 쓰잘떼기 없는 나라는 이제 쫄딱 망할 수 밖에 없다.
개혁이고 뭐고 필요없다!
지금 해대는 이런저런 개혁이란 게 어차피 모조리 전부 다 다수파 놈들만을 위한 것이잖은가!
우리 소수파는 그딴 것에 기대하지 않으며, 물론 협력도 하지 않는다!
우리 소수파도 이딴 나라에 ㅁㅝㄱ 하나 바라지 않는다.
우리 소수파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이딴 나라를 이제 쫄딱 망치는 것다!!!
굳이 말하자면 이젠 정부 전복 외엔 없다!!!
소수파 제군, 이를 기회로 정부전복이라는, 무시무시한 음모를 함께 하지 않으련가.
포스터에 연락처가 적혀 있으니 선거 중이건 끝난 뒤건 관계없다.
나한테 전화 한 통 해다오.
물론 선거권 없는 미성년 제군이나 도쿄도 이외 제군도 상관없다.
우리 소수파에겐 선거따윈 원래부터 전혀 관계없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다.
내가 당선되면 놈들은 쫀다. 나도 쫀다.
토야마 코우이치에게 악의의 한 표를! 토야마 코우이치에게 자포자기의 한 표를!
아니면 투표따위 하지마라! 어차피 선거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단 말이다!

 

무소속, 토야마 코우이치의 정견 발표였습니다.

 

 

 

정부전복 : 일본 정부는 테러에 굴복하라!!

그냥 헛소리만 하는 놈으로 보이는 것도 뭐하니 가끔은 진지한 이야기라도 써 보겠다.


현재 우리 나라는 전시 체제하에 있다, 라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이것은 무언가 레트릭(말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2001년 9월 11일의 동시 다발 테러 이후의, 미국이 수행해 온 "대 테러 전쟁"에, 우리 나라가 말려들어 사실상 참가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인식은, 그런 잠이 덜 깬 우익의 헛소리와는 다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미국 대 이라크(또는 아프간)의 전쟁과 상관없는 것은 물론, 미국 대 테러리스트의 전쟁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사실은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제 독자적인 견해가 아니라, 구미 일부의 철학자, 사상가들의 견해에 저도 찬동하고 있는 것뿐입니다만, 그들의 문장은 너무 어려워서 일반인이 읽을 만한게 아니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풀어서 설명하면, 현재 행해지고 있는 전쟁은, 과거와 같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아니라, 국가의 안쪽에서 일어나는 다수파 대 소수파의 내전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내전)은, 처음에는 [테러 방지]를 구실로 시작되었지만 표적은 당초의 [테러리스트]에서 점점 확대되어, 결과적으로는 다수파에 불안감을 느끼게 할 만한 언동을 하는 모든 인간이 감시, 적발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이건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경향으로서, 사실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의 본질도 이러한 것입니다(그 증거로, 내전일 경우에는 보통 군대가 아닌 경찰이 전선의 주역이 됩니다만, 미군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돌입한 상황도, 사실 이러한 내전인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내전은, 사실상 95년에 옴 진리교 신자의 감시, 적발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만 역시나 그 후에 분별 없이 그 대상을 확대하여 지금에 와서는 과거에는 [민폐]였긴 하지만 [범죄]가 아니었던 행위마저도 신규 입법에 의해 점차 범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치정 다툼(현재에 와서는 [DV(1)]라거나 [스토커]로 불립니다)이나, 노상 흡연 등이 그 전형이며 또한 우리 어른이 만들고 있는 사회의 일그러짐이 원인임에 분명한 소년 범죄의 증가에 대해, 그 원인을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단지 강력한 처벌로 대응하려는 방침도 그 일환입니다.
사회의 이러한 풍조를 [정말 괜찮은 걸까]하고서 걱정하는 사람은 저 한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혹시 이것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같은 느낌을 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즉 우리는 현재, 압도적인 소수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의식을 적당한 데에서 애매하게 매듭짓지 않고, 자-알 전개시켜 나가 보면 마침내 깨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이제 와서 이 사회의 다수파에 있어서는, 그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만 우리 같은 존재 자체가, 재수 없고 두려운 [적]인 것입니다.
그 놈들(다수파)은 우리(소수파)를 대상으로 전쟁을 걸어온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는(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다수파와 소수파의 대립은 이미 전쟁(내전) 상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에서 [반전]을 외치는 비현실적인 몽상가가 아닙니다. 다수파 놈들은 불안해지면 할수록 히스테릭한 상태가 되어, 이미 어떠한 설득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 내전은, 우리 소수파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사라지는(무언가 구실을 잡아 [범죄자]로 만들어 투옥되거나, 그게 두려워서 완전히 침묵하거나) 그 날까지 끝나지 않습니다(부시도 [영구 전쟁]을 주창하였습니다).
또한 저는 원래부터 개헌론자이며 군비 확대에는 반대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예를 들어, 북한과 전쟁을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소수파에 있어서 현재 가장 우려해야 하는 일은 군대의 확대가 아닌 경찰의 확대입니다.
종래에 있어 온 잠이 덜 깬 좌익의 [반전파]는, 이러한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잠이 덜 깬 좌익은 그 전가의 보도인 [단순하며 알기 쉬운 정의]를 내걸고 경찰력 확대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DV]나 [스토커]의 범죄화를 요구하는 페미니스트나 노상 금연의 범죄화를 요구하는 금연권 주의자등이 그 대표입니다).
저는 현재의 여러 가지 재수 없는 범죄 증가의 배경에는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나 지역 공동체의 붕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치안 회복]을 위해서는 다수파 놈들이 주장하는 처벌 강화와 같은 법적 처벌은 쓸모 없고(그와 같은 감시 사회화는, 점점 더 사람들의 마음에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 범죄 증가를 더욱 부추기게 됩니다), 전통적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최근의 [헤이세이 대합병(2)] 정책 등은 여기에 반하는 공동체 파괴 행위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제 견해는 오히려 우익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우익은 생각이 얕은 것인지, [치안 회복]에는 강경 처벌이라는, 다수파 놈들의 히스테리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수파 놈들에게서 [범죄자 예비군]으로 취급받고 있는 소수파 여러분께 단결할 것을 호소합니다.
다수파 놈들의 기세는 사그러들 줄을 모릅니다. 이미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저는 [반전파]가 아닙니다. 우리 소수파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선택은, 단결해서 [응전]하는 것입니다. 현 단계에서는 우선 단결하여, 우리 소수파의 대열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이번에 제가 입후보한 것은 무엇보다 소수파 여러분에게 이 같은 형태로 대대적인 단결을 호소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제 견해에 [허어, 그럴싸한데?]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우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눕시다. 선거 기간 중 (3월 22일~4월 8일 매일) 매일 밤 8시, 코엔지역 남쪽 출구 집합입니다(선거 종료 후의 연락처는 080-3188-1162). 다수파 놈들에게 반격하기 위한 [작전 회의]를 시작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중고생 같은 미성년자나 토쿄도 이외에서 참가하는 것도 대환영입니다.
사실상 놈들이 압도적 다수이며 우리는 압도적 소수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제가 당선될 가능성은 완전히 0%일 거라 자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뭔가 잘못되어 당선되어 버리면 저 자신이 쫄아버릴 것 같긴 합니다만, 뭐... 그 정도의 리스크(?)는 이미 각오하고 입후보했습니다.
제가 득표한 표가 많으면 많을 수록 저조차 쫄아 버릴 것 같을 정도이니, 다수파 놈들에게는 틀림없이 공포스러운 사태가 될 것입니다. 당선되느냐 아니냐 하는 건 다음 문제입니다. 설령 당선되지 않더라도, 한 표라도 제 득표가 많아진다면 다수파 놈들은 그만큼 당황할 것입니다. 우리 소수파의 존재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서 다수파 놈들 앞에 들이밀어 주는 것은 이제부터 반격을 개시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어차피 다수파 놈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우리 소수파에게 있어선 너무나 바보스런 선거라는 제도(다수결로 결정한다면 다수파가 이기는 것이 당연합니다)에 있어서 [한 표의 무게]같은 건 거짓부렁이나 다름없습니다. 누가 당선되든 낙선하든, 다수파 놈들의 지배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저 같은 입후보가 나타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당선되든지 말든지, 그 한 표는 다수파 놈들의 가슴 속 깊숙히 두렵게 만드는 [무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 참 꼴 좋구나, 라는 겁니다.
어차피 선거 따위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선거에서는 어찌 됐든 다수파 놈들에게 한 방 먹여 주고서, 우리 소수파는 의회 같은 엿같은 장소 바깥에서 단결을 개시하여, 다수파 놈들에게 본격적으로 한 방 먹여줄 수 있는 정부 전복에 대한 엄청난 음모를 착착 진행해 나가는 것이 어떠할까요.


투표용지(쓰레기)는 어쨌든 [토야마 코이치(外山恒一)]에게라도 낙서해서 투표함(쓰레기통)에!


뽀나스 : 토야마 코이치 출생의 비밀
동서고금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카리스마성이 있는 지도자에게는 역시 그에 걸맞는 드라마틱한 출생 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번에 급히 생각해 낸 전설에 따르면 1970년, 카고시마현(鹿兒島県) 하야토정(隼人町)의 한 구멍안에서, [도반유죄 혁명무죄]라고 하며 처녀인 말에게서 태어났다.

 

譯註 :
(1) dating violence. 연애 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 사태.
(2) 2000년(헤이세이 12년) 경부터 일어나고 있는 지방자치제끼리의 합병 붐을 일컬음. 비대화된 지자체 조직을 축소, 통합할 수 있기 때문에 중앙 정부도 찬성하는 입장. 비판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토야마 코이치(外山恒一). 1970년7월26일생. 카고시마현 하야토쵸에서 태어나 1975년 후쿠오카현 오노죠시로 이사한 후 대부분의 시기를 후쿠오카에서 보냈음. 정치운동가, 전위예술가, 평론가 등으로 활동 중.

토야마는 1980년대 말에 반(反)관리교육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주로 큐슈를 거점으로 정치적, 예술적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관리교육이란 학생에게 자율성을 주지 않고 학교나 교사가 학생활동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교육방침을 말합니다. 역자 주)

활동 초기에는 비교적 민주주의적인 노선의 온건좌파운동가였으나 이후 급속히 급진화되어 어린이권리조약 비준 촉진운동을 좌파적 입장에서 격렬히 비판하는 등, 기존의 반 관리교육운동세력과 적대적인 입장을 내세우다가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토야마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공격의 대상을 한층 더 넓혀 당시의 좌익운동 전반으로 확장해 감으로써 이단적인 극렬좌파운동가로서 이미지를 구축하며 1990년대를 보내게 됩니다.

또 길거리 음악가(소위 스트리트 뮤지션)로서 활동하며 이를 주된 수입원으로 삼는 것 외에 빈번히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독특한 유머 센스를 살린 전위예술작품(주로 퍼포먼스 아트)를 발표하는 등, 기이한 행적이 많습니다. 게다가 저서를 몇 권이나 낸 문필가이기도 하고요.

2000년에는 상해죄와 명예훼손죄로 2년간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옥중에서 파시즘에 경도되어 현재는 스스로를 파시스트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도쿄지사선거에 입후보하여 TV 정견 발표 프로그램에 출연, 정부 전복을 골자로 한 연설로 일약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우리 같은 소수파에게 선거 같은 건 쓸모없는 일이다라고 말했으나, 그렇다면 왜 입후보 했느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선거 포스터로 답하여 또 한번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선거에서는 총 15,059표를 얻어 득표율 0.3%로 낙선했다는군요. (그래도 총 14명 중에서 8위네요 ^^;)

토야마에 대해서는 그 활동영역이 매우 다방면에 걸쳐 있는 데다가 또 그 과정에서 사상적 입장도 몇 번인나 크게 바뀐 바가 있어서, 이 사람을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한다거나 간략하게 소개한다는 게 참 어렵다고 합니다. ^^;

토야마가 반관리교육운동가가 된 계기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의 사정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토야마는 1986년에 후쿠오카시 니시구에 소재한 사립 나카무라학원 산요고등학교에 입학햇는데, 이 학년도가 제1기였던 산요고등학교에서는 엄격한 학생 관리가 행해졌다고 전해집니다. 토야마는 이에 반발하여 교무실에서 단신 항쟁을 벌였다고 하는데, 이게 이후 토야마의 여러 가지 정치적 활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산요고등학교에서 1학기를 마친 토야마는 동년 9월에 카고시마현립 가지키고등학교로, 그 1년 뒤에는 후쿠오카현립 치쿠시가오카고등학교로 전학을 반복하다가 1988년5월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9월에 대입검정고시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습니다.

이처럼 잦은 전학과 퇴학 이력의 배경에는 가는 학교에서마다 학생 관리체계에 대한 반발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토야마가 10대 후반을 보낸 1980년대 후반은 지나친 교칙이나 체벌 등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관리교육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저항운동도 다양하게 시도되었던 시기라고 전해집니다.

토야마는 고등학교 자퇴 약 1년 후인 1989년1월, 본인의 투쟁 경험을 쓴 수기 나의 고교 자퇴 선언을 토쿠마쇼텐에서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반관리교육운동을 시작합니다. 이후 반관리교육운동의 최좌파로 경향을 굳힌 후로 1990년대를 전후하여 원자력발전반대운동, 천황제반대운동 등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토야마의 경력 중 가장 특이한 것이 바로 가두 라이브 가수인데요, 본래 1960~70년대에 반전 성향을 띠고 전개되었던 포크게릴라운동에 착안하여 거리에서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건넨다는 콘셉트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감각을 공유하는 젊은이들을 모아 보겠다는 취지로 1989년8월에 시작한 이 활동은 1990년대에 들어 장소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유흥가 오야후코도리 입구(親富孝通り入り口)로 옮기면서 점차 돈 많은 취객들이 던져 주는 돈을 수입원으로 삼기 위한 활동으로 변해 갔고, 이 활동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토야마의 주요한 수입원 중 하나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이후 1990년대 상반기에는 주간 SPA!의 나카모리문화신문에 반교육의 혁명아라는 슬로건으로 소개되면서부터 출판계와 서브컬처계에서 비교적 유명인의 반열에 들게 됩니다.

그리고 1993년10월에는 반공좌익혁명결사 일본파괴당(反共左翼革命結社 日本破??)을 결성했는데, 이 일본파괴당의 활동에 대해서는 몇 가지 재미있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우선 일본파괴당이라는 과격한 이름은 당시 아직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던 일본사회당의 패러디였을 뿐, 사상적인 깊은 의미 같은 것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일본파괴당은 토야마의 원맨 그룹이었으며, 1994년에는 본인의 실연(失戀)으로 인해 당의 활동이 정체에 빠질 정도로 지극히 개인적인 그룹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게, 그 우스운 실체에 전혀 맞지 않을 정도로 큰 사건도 몇 갠가 터뜨린 적이 있는, 특이한 그룹이라고 하는군요.

그 중 대표적인 게 1994년7월에 있었던 공안조사국사건으로, 이 수상한(?) 단체의 활동 내역을 감시하던 큐슈공안조사국 직원이 관계 내부 문건을 하필이면 토야마의 아파트 앞에 떨어뜨리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사건입니다. 결국 이 문건을 본 토야마 등 파괴당 멤버들이 일대 소동을 피웠는데, 현지 미디어에 보도되는 등 파장이 꽤 있었지만 토야마 자체가 현지 기성 좌익세력-즉, 이런 종류의 문제에 민감한 인권파 활동가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협력이나 지원을 얻지 못해 그만 유야무야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위에 기술했듯이 실연으로 활동이 침체되었던 토야마는 1995년도에 들어서 두 가지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것이 전 일본을 뒤흔들었던 1월의 한신대지진과 3월의 옴진리교 사린가스 살포사건입니다.

한신대지진이 일어났던 다음날 수 명의 동료들과 히치하이크로 참사 현장에 관광차 놀러 갔던 토야마는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그간 휴머니즘에 대해 너무 강한 반감을 품어왔던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옴진리교 사건 당시에는 반대로, 옴진리교 신자라면 무조건 체포하는 경찰의 행태와 그것을 지지하는 미디어 및 여론에 대해 저항운동을 시도하지만, 이미 완전히 고립된 이단적 극좌운동가로 낙인 찍힌 토야마는 같이 싸워줄 동지조차 전무한 스스로의 처지를 확인하는 데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던 와중에 도쿄에서 활동하던 다메연합(だめ連. 뭘 해도 안 되는 인간들의 모임을 주창한 단체로, 일종의 백수 연합. 한국의 백수 단체와 접촉했던 사실도 있음)과 접촉한 토야마는 그 소박하고 촌스러운 콘셉트에 강렬한 필(feel)을 느껴서 이를 후쿠오카에 수입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후쿠오카판 다메연합에 대한 각종 시도가 1990년대 후반기 토야마의 주요 활동 내역을 수놓게 됩니다.

토야마가 주도한 후쿠오카판 다메연합은 다메연합의 본 취지 뿐만 아니라 여기에 기성 좌익 비판이라든가 반(反)감시사회, 반(反)경찰국가화 둥 토야마가 주목하고 있던 여러 가지 콘셉트가 통합된 새로운 운동으로 분화됩니다.

1999년3월에는 당시 사귀고 있던 후쿠오카판 다메연합의 여성 멤버가 교제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고 하자 그녀를 폭행하는 사건을 일으켜 오랜 동료였던 야베 시로, 야마노테 미도리 등으로부터 여성차별주의자로 지목 당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후쿠오카판 다메연합의 해체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토야마는 물론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음해인 2000년3월 야마노테 미도리의 도쿄 운동 거점인 아파트에 침입하여 그를 구타하는 보복 테러를 일으켰지요.)

게다가 전술한 구타 사건에 대하여 경찰이 토야마를 상해 용의로 기소하고 피해 여성도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으며, 후쿠오카 현지의 기성 좌익운동계가 여성 쪽을 지원하게 되자 토야마는 옴쭉달싹도 할 수 없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1999년부터 2000년의 2년간에 걸쳐 진행된 이 사건의 민사/형사 공판에서도 토야마는 법정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의 엽기적인 행동으로 재판관을 격노시켜 형사법정에서는 징역 10개월의 실형 판결을, 민사법정에서는 벌금 100만 엔의 배상 판결을 받아 결과적으로 두 재판에서 모두 완벽하게 패소하게 됩니다.

또 2002년5월14일에는 소위 재판 투쟁의 일환으로 재판 경과를 상세히 보고하는 사이트 상에 민사재판에서의 상대방 변호사를 비방하는 내용을 올렸다가 명예훼손혐의로 체포,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살게 됩니다.

결국 토야마는 이 두 가지 건으로 인해 거의 2년 동안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고, 2004년5월5일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하게 되었는데요... 옥중에서도 반항적인 수감생활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물론, 2003년5월 경에는 파시즘에 경도되어 스스로를 좌익이라 칭하는 데에서 벗어나 파시스트를 자칭하게 됩니다.

출소 후에는 옥중에서 구상한 파시스트당 우리단을 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2005년11월에는 카고시마현 키리시마시 의원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정부 전복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예상대로 최하위 낙선하였으며, 2007년도 도쿄지사선거에 출마하는 한편 쿠마모토시의원선거에도 입후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낙선하긴 했지만, 지난 3월25일 아사히TV에서 행한 도쿄지사선거 정견발표에서는 유권자 제군, 내가 바로 토야마 코이치다.라는 당돌한 인사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박살내자라든가 제군 중 상당수는 나의 적이다. 나는 여러분 중 소수파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단결하여 일어설 때이다라는 등의 말로 정부 전복을 호소하더니 마지막에는 카메라를 향해 뽁큐를 날리는 엽기적인 행동을 하였고, 이것이 세계 최대의 UCC 동영상 사이트 YouTube에 업로드되면서 일약 인터넷의 유명인사가 된 것입니다.

 

저서: 나의 고교 자퇴 선언 - 굿바이 하이스쿨
        하이스쿨 불량품 선언 - 반관리교육 중고생 네트워크 DP클럽의 전말
        교문을 닫은 건 교사인가? - 고베 타카츠카고교 교문 압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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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블루 허츠 펑크 일기
        보이지 않는 총 - 토야마 코이치, 고군분투의 궤적/대략 모든 기록
        히트곡을 들으면 사회가 보인다
        최악입니까?! - 토야마 코이치 어록

 

http://warewaredan.com/blog/

 

 From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08388120070409085738&skinNum=1

          http://ledman97.egloos.com/3099574

          http://kr.blog.yahoo.com/jp.capsule/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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